『겨울날 따스한 볕을 님에게 비취고자/ 봄 미나리 살진 맛을 님에게 드리고자…』 누구에겐가 무엇을 주고싶은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한 이가 송강(松江) 말고 또 있을까. 흔하디 흔한 햇볕과 봄철이면 어디나 지천으로 널린 소채(蔬菜)이건만 누구를 위하는 마음이 이렇게 극진하면 그 감동은 오래가는 법이다.색색으로 피어나는 산꽃보다 봄을 더 봄답게 해주는 미나리의 살진 맛. 이 맛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건 우리들이 유독 우울한 봄을 맞고 있는 까닭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름겨운 소식들. 마음 속에 깊은 그늘이 드리우고, 독하기만한 생활의 쓴맛에 기운차리지 못하고 휘청이는 이웃과 함께 한줌 따스한 볕과, 살진 미나리 맛같은 희망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생활에 휩쓸려가다 잠깐 멈춰선 순간. 허허로운 마음, 대범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하면 시건방진 얘기라 외면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사람의 말이 아닌 은근한 음악의 권유는 한결 설득력있게 들린다. 우리 전통음악중 피리로 연주하는 「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이라는 명곡이 있다. 느릿하고 무미한듯 유장하게 흘러가는 독주곡이다. 이른 봄날 물 오른 버드나무 새 가지를 연상시켜주는 이름인 「유초신」이란 곡명은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선비 풍류음악인 영산회상의 변주곡에 붙인 멋스런 이름인데 실제로 이 음악은 봄바람에 몸을 내맡긴채 일렁이는 담황(淡黃)빛 버드나무의 흥을 들려주는 듯하다. 이 음악은 관현편성의 대규모 합주로도 연주되지만 피리나 대금 독주로도 자주 연주되는데, 독주로 연주할때면 주자들이 혼자 간직해온 음악혼을 마음껏 펼치기 마련이어서 곡의 명곡다움이 한껏 더 빛난다. 더욱이 싱싱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피리독주는 세월과 자연에 마음을 내 맡기는 대범함을 가르쳐 주며, 시원한 계곡의 물살처럼 마음의 우울을 걷어갈 기분좋은 파문을 한없이 그려낸다.
봄미나리의 살진 맛처럼 생활의 쓴 맛을 걷어갈 유초신지곡의 피리선율로 올봄 우리의 이웃과 지극한 감동을 함께 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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