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알프스 산록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4자회담이 열렸다. 제네바 4자회담 나흘째인 19일, 한국과 북한 미국 중국간 회담장이 알프스 산중 마을을 찾아가는 버스로 옮겨졌다.오후 1시 4개국 대표단원 30여명은 2대의 버스에 분승해 제네바를 출발했다.국제회의센터 회담장을 벗어나는 오랜만의 외출. 3월의 봄기운이 포근했다. 각국의 수석 및 차석대표와 통역원 등 모두 12명이 1호차, 나머지 단원 20여명이 2호차에 나눠탔다. 1호차는 마주보며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내부를 개조, 테이블이 가운데 놓인 버스다.
레만호수를 끼고 도는 긴 도로를 뒤로 하면서 버스는 어느덧 알프스 산허리에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뜨거운 차한잔의 여유와 창밖 구경도 잠깐뿐, 4자회담이 재개됐다. 오전 회의의 속개. 실무위원회의 구성방안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뜨거운 논쟁의 열기가 삽시간에 버스안을 달구었다. 실무위의 성격과 명칭 운영방식 등 불과 몇시간전의 이야기를 거듭 되풀이해야 하는 답답함. 말 한마디 삐끗해 꼬투리를 잡힐 지 모르는 극도의 조심성과 팽팽한 긴장감. 이번엔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공동의 강박관념까지 대표들의 머리를 짓눌렀다. 눈덮힌 거봉들과 울창한 숲, 푸른 초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알프스 계곡을 쉼없이 달리던 버스는 1시간30분만에 목적지인 그뤼에르 마을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이곳은 매혹적인 경관과 스위스에서 가장 맛있는 치즈를 만드는 공장으로 유명하다. 대표들은 중세의 성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마을과 치즈공장을 2시간 가량 둘러보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이날의 방문은 스위스 정부가 대표단을 위해 마련한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대표단은 돌아오는 길에도 또 「버스회담」을 가졌다.
모두들의 표정은 모처럼의 「외출」로 환했다. 그러나 버스회담은 혹시나 하는 기대와 달리 별다른 결실을 얻지 못했다. 4자회담은 여전히 탁자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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