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그려낸 ‘이발소 그림’ 한장/70년대초 시골마을 세상에 눈떠가는 열살소년의 이야기/능청스런 기지·해학 애교있는 입심 감칠맛소설가 성석제(38)씨가 「이발소그림」을 한 장 그렸다. 그가 두번째로 쓴 장편소설 「궁전의 새」(하늘연못 발행)는 우리 기억 속의 이발소그림이다.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는 통속적인,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추억으로 코팅될 때는』 아련한 그리움에 잠깐 목이 메게 되는 그런 그림. 60년대말 혹은 70년대초. 동네에서 가장 유리창이 많고, 흰 수건들이 허연 김을 뿜으며 내걸려 있고, 한켠에서는 면도용 비누거품이 끓고 있던 이발소. 그 이발소 의자 위에 나무판을 걸쳐놓고 앉아 까까머리를 내맡기고 있던 꼬마들이 보던 그림이다.
성씨는 90년대 한국문학의 빛나는 개성이다. 「궁전의 새」에는 지난해 단편 「유랑」으로 제30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그 개성을 확인받은 성씨의 솜씨가 다시 드러난다. 소설은 1부 「어린 도둑과 40마리의 염소」, 2부 「궁전의 새」로 구성된 연작장편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은 이제 막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 들어간 「장원두」라는 착한 소년이다. 동쪽으로는 「곤장을 치려고 벗겨놓은 엉덩이같이 생긴」 동곡, 서쪽으로는 「그냥 마을사람들이 동곡하고 장단을 맞추기 위해」 이름 붙인 서곡에 둘러싸인 궁벽한 시골마을에서 원두는 할아버지가 기르라고 맡긴 염소 2마리를 돌보며 자라난다. 이 마을에 어느날 모자가 찾아든다. 스무살 남짓한 그 아들은 「기타 리」라는 떠돌이 기타연주자. 그는 원두에게 바깥세계와 성장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주는 존재다. 「기타 리」의 솜씨에 반한 원두는 가진 것 없는 그를 읍민노래자랑대회에 출전시켜 주기 위해 할아버지 곳간 창고의 나락을 훔쳐내다 들켜 결국 그를 다시 도회로 나가버리게 만든다. 남은 것은 원두와 그가 기르던 염소가 새끼쳐 낳은 꼬마염소 40마리뿐.
2부 「궁전의 새」에서는 원두보다 나이 많은 바보 「진용이」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갑자기 초가지붕이 모두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고 도시락에 보리밥을 섞어가지 않으면 선생님으로부터 벌을 받던 시절, 어디에나 한 명은 있었음직한 그런 바보소년이다. 진용이는 늘 따돌림당하고 멸시받지만 원두가 깨닫기에 그야말로 생의 악착스런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이 외진 마을에 깨우쳐주는 인물이다. 어른들의 거짓세계에서 진용이야말로 자신의 궁전을 가진 새의 왕자 「봉」이었던 것이다. 성씨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어른들의 위악적인 세계에서 삶의 눈을 떠가는 꼬마의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늘 성씨의 소설에서 주제보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말하는 방식이다. 능청스러운 기지와 해학, 애교스런 허풍 섞인 문장은 글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준다.「옛날 옛날에 장원두라는 착한 소년이 살았습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시종 「했는데요」「있었고요」「했나 보지요」하는 식의 이야기투로 독자들을 웃고 울게 만든다.
성씨는 『나는 천생 모더니스트는 아니다』면서 「막걸리잔에 복숭아 열리기를 기다리는 인간」으로 자신의 무위를 이야기했다. 성씨는 이번 학기부터 동국대 국문학부에서 「소설창작연습」 강의도 맡고 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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