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 두꺼운 노트 보며 꼼꼼히 업무지시/공정위 토론활발… 재경부 환란의식 경직○…새정부 출범후 처음으로 이뤄진 16일 재경부와 공정거래위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는 시종 진지한 분위기속에서 토론위주로 진행됐다. 사전에 준비된 시나리오는 없었다. 김대통령은 두꺼운 노트에 써온 메모를 보며 업무지시를 하면서 가끔 실무진들보다 더 자세한 수치를 언급,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활발한 토론을 기대했던 청와대측은 실·국장급 참석자들까지 거침없이 대통령과 의견을 나눈 공정거래위에 대해서는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반면 대통령의 「지명」이 있고서야 답변을 하는 수준에 그친 재경부에 대해서는 『역시 경직돼 있더라』고 일침을 놓았다. 박지원 청와대대변인은 보고회가 끝난뒤 『공무원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개방형 토론방식 보고회에 참여의식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만족해 했다』고 자평했다.
첫 순서인 재경부 보고는 김대통령일행이 오전 9시30분께 과천청사 재경부 회의실에 도착하면서 곧바로 시작됐다.
김대통령은 15분동안 재경부의 업무보고를 들은뒤 곧바로 차분한 목소리로 관련 수치를 꼼꼼히 제시하며 외환수급대책, 고금리해소 방안등을 물었다. 20여분간 문답에 가까운 토론이 끝난뒤 김대통령이 각종 정책에 대한 당부를 20여분간 하면서 『과거 재경원이 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심기일전을 촉구하자 재경부 간부들의 얼굴은 일순 긴장됐다.
이어 오전 10시50분부터는 공정거래위 회의실에서 거래위의 보고가 이어졌다. 일부 간부들은 은행의 담합행위에 대한 과징금액수와 외환수수료율 등을 놓고 「과감하게」 김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제시, 오히려 청와대측의 후한 점수를 받았다. 김대통령은 간부들의 발언을 대부분 직접 기록하며 경청했다.
한편 김대통령은 일부러 발언기회를 주는가 하면 『여기 총리가 와 있으니 참고해 달라』고 특별히 당부하는등 배석한 김종필 총리서리를 배려하려 애썼다.
○…재경부 직원들은 대통령이 정부청사를 직접 방문해 업무보고를 받고 그 내용을 구내방송을 통해 전직원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한 데 대해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업무보고 시간이 1시간 안팎으로 비교적 짧아 청와대가 구상한 「토론식」 업무보고의 완성도가 다소 뒤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무실에서 방송을 들은 직원들은 『과거 재정경제원이 꼭 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김대통령의 지적이 있자 환난에 대한 책임을 의식한듯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재경부의 역할을 재차 강조한 탓인지 업무보고후에는 대체로 고무된 표정이었다.
○…공정위는 수석부처인 재경부와 같은 날 업무보고를 한데다 김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고충까지 건의받자 공정위의 위상강화에 큰 기대를 거는 분위기였다. 공정위의 한 과장은 『그동안 간접적으로 공정위에 대한 김대통령의 관심을 전해들었으나 이번에 육성을 통해 확인하게 돼 느낌이 새롭다』고 말했다.
일부 직원들은 공정위의 고충을 건의하면서 숙원이었던 조사권 강화문제 등을 거론하지 못한 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으나 한 간부는 『업무보고자리에서 말하기 곤란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신효섭·정희경 기자>신효섭·정희경>
◎재경부 대화록/김 대통령 “IMF와 금리조정 가능성 있나”/“외환안정 조짐… 오늘부터 재협의 예정”
▲김 대통령
올해도 외환수급이 중요한데 외환수급 상황을 잘 설명해 주십시오.
▲김우석 국제금융국장
올해 외환소요액이 700억달러여서 앞으로 318억달러가 더 필요한데 증권시장에서 70억달러, 국채발행을 통해 100억달러, 기타 신디케이트론을 적극 유치하겠습니다. 3월중 세계은행(IBRD) 20억달러 인출조건이 타결돼 들어오고 서방 7개국(G7)국가들과의 80억달러 지원건은 아직 미국과 약간의 조건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4월중 유입되도록 하겠습니다. 또 국채발행을 통해 30억달러가 이달중 들어오도록 하겠습니다.
▲김 대통령
기업의 자금난이 심한데 국제통화기금(IMF)과 금리하향조정 가능성이 있습니까.
▲정덕구 차관
IMF도 고금리로 국내 수출기업이 원자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 고금리로 인한 고통을 이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외채 만기연장 타결률이 높아지면서 외환시장 안정의 조짐이 확실해지고 있는 만큼 오늘부터 IMF와 금리인하 재협의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김 대통령
물가통계는 공식적인 일반물가와 생활물가를 따로 내는 2원화 체제가 어떻습니까.
▲이규성 장관
공감합니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물가에 대한 발표를 통해 물가발표의 신뢰성을 높이고 물가안정에 노력을 기하겠습니다.
▲김 대통령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원인중 하나가 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은행장 등 경영진 선임을 자율로 맡겼더니 은행의 부실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 재선임되는 등 결과가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재경부로서 은행의 주총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은행을 협조지도할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 장관
금융기관 자신이 환골탈태 및 대변혁을 요구받고 있어서 4월말까지 경영개선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내용이나 실천의지가 미흡하면 응분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김경철 기자>김경철>
◎공정위 대화록/“외환수수료 담합 과징금 실효없다는데…”/“규제개혁 미흡… 대통령께서 독려” 건의
▲김 대통령
날림공사와 국고낭비의 원인이 되고 있는 불공정 하도급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위원장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전윤철 위원장
제도적으로 보호장치가 있으나 신고나 고발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직권조사를 확대하겠습니다. 공공공사의 경우 원사업자가 발주자로부터 공사대금을 현금으로 받은 경우 하도급자에게도 현금지급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습니다.
▲김 대통령
일반공사도 그렇게 유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 위원장
(일반공사의 경우) 발주자가 어음으로 공사대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 무리가 있습니다. 대신 원사업자의 부도시 손해가 없도록 지급보증제도를 시행중입니다.
▲김 대통령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외환수수료 담합인상에 대해 최고 5,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그 정도로는 실효가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전 위원장
금융기관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 충족문제 등을 감안했습니다. 앞으로 공정위 역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대통령
공정위의 고충이 있으면 건의해 주십시오.
▲김병배 국장
그동안 규제개혁이 미흡했습니다. 공무원의 의식행태가 바뀌지 않은 것도 한 원인입니다. 대통령께서 장관들을 독려해 주십시오. 관계부처간 이견조정이 안되는 경우 경제대책조정회의에 상정,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에 앞서 업체들의 반발, 어음제도 개선의 시급성 등에 대해 국장 3명이 건의했다)
▲김 대통령
공정위는 시장경제의 파수꾼입니다. 대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되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는 막아야 합니다. 흑자기업, 외화 잘 버는 기업이 필요합니다. 나라경제를 살리는 시장경제 만드는데 사명감을 갖고 노력해 주십시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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