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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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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8.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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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기죽고 맥빠진 국민들을 위무하고 격려해 줄 사람은 교통경찰관들이다. 길거리의 교통경찰관이 무슨 수로 나라의 경제살리기에 힘이 되고 국민의 마음속 주름살을 펴겠느냐고 하겠지만 나라가 새로 일어서는데 늘 서 있는 교통경찰관이 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우리나라 교통경찰관은 온 국민을 약올리기 위해 길거리에 서 있는 것같다. 차 가진 사람 치고 교통경찰의 단속에 한두번 안 걸린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번 걸리면 적어도 하루는 진종일 기분을 잡친다. 직장에 나가도 울화가 터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가정에 돌아오면 공연히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린다. 그날은 재수 없는 날이다. 하루에도 전국에서 수천수만 건씩의 단속이 있을 것이고 보면 한해 내내 온 나라가 분통의 도가니속에서 속이 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국민들끼리 아귀다툼을 하게 되고 나라는 온통 불협화의 소음으로 가득 찬다.

교통경찰은 달리는 차를 손짓 하나로 꼼짝없이 길가에 세우고는 기계적으로 경례를 붙인 뒤 『도로교통법 ×조 위반입니다』를 총알같이 내뱉으면서 대뜸 운전면허증을 내놓으라고 한다. 운전자들이 도로교통법 조문을 달달 외우고 다닐 수 없어 무슨 위반을 했느냐고 물으면 덜렁 죄목만 일러준다. 이에 대해 해명을 하려고 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고 면허증 제출부터 요구한다. 운전자에게 면허증은 목숨줄 같은 것이다. 면허증을 보이면 무조건 일방적으로 범칙 딱지가 떨어진다는 것을 안다. 일단 딱지가 떨어지면 아무리 정당해도 즉결 재판까지 가기 전에는 도로교통법상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다.

길을 지나다 보면 단속에 걸린 차들이 고분고분 교통경찰관의 처분에 승복하는 경우가 드물다.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은 운전자로서는 무엇인가 억울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로서는 분명한 위반사항이 있어서 적발한 것이겠지만 운전자가 억울해 하는 것은 대부분 위반인 줄 몰랐거나 부득이 했을 경우다. 적어도 고의성이 없을 때다.

가령 네거리에는 좌회전을 하자마자 횡단보도가 있는 곳이 많다. 좌회전 신호는 대개 짧기 때문에 급회전을 하게 마련이고 횡단보도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운전자는 그냥 돌진한다. 이럴 때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무시했으면 교통경찰이 잡는다. 이런 상습 위반지역에는 반드시 백차가 대기해 있고 그 옆에는 위반차량들이 줄줄이 서 있다.

교통경찰의 존재 목적은 원활한 교통소통과 사고 예방이다. 경미한 교통위반은 단속함으로써 오히려 소통에 지장이 있을 때는 눈감아야 한다. 교통법규를 잘 몰랐거나 교통표지가 눈에 미처 띄지 않아 위반했을 때는 그것이 현저한 사고유발의 원인이 되지 않는 한 면허증 보자고 할 것도 없이 친절히 주의를 시키고 놓아주면 된다. 위반을 했더라도 전혀 교통방해가 되지 않은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교통경찰 앞에 항상 소심한 선량한 운전자들은 한번 주의를 받으면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교통경찰은 범칙금 모으는 거리의 세리가 아니라 길 안내하는 거리의 등대다. 위반차량에 대해 딱지를 떼기 위해 잡는 것이 아니라 훈방하기 위해 잡는 마음가짐이라야 한다. 꼭 처벌해야 하는 것은 교통질서를 위협하는 고의적이고 악질적인 위반자들이다.

운전자는 사냥거리가 아니다. 교통위반 다발지역에 백차가 매복하고 있는 것은 함정을 만들어 놓고 짐승을 노획하는 짓이다. 여러 사람이 자주 위반한다는 말은 교통표지나 신호체계 등 어딘가에 안내의 불친절이 있다는 증거다. 그 함정을 메울 생각부터 해야 한다. 이럴 때 위반자는 대개 이 길을 처음 다니는 사람들이다. 교통경찰은 언제나 길을 묻는 초행자 앞에 선 자세라야 한다. 길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교통경찰이다.

교통경찰은 신호등이다. 길거리의 신호등일뿐 아니라 나라의 신호등이다. 온 국민이 이들의 손짓 하나로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선다. 마찬가지로 교통경찰의 바른 자세는 국난을 극복해야 할 나라가 갈 길을 가리킨다. 정부가 통제 대신 봉사하는 것이 나라를 개혁하는 첫 걸음이다. 그렇지 않아도 억울하고 분한 일이 많은 요즘인데 국민을 더 이상 억울하고 분하게 만들지 말자. 교통경찰이 길을 잘못 가는 차를 세워 밝게 웃는 얼굴로 바르게 길 가는 법을 가르쳐주고 경례를 하면서 그냥 보내주면 이 찌푸린 시대에 온 국민이 얼마나 기분좋게 활짝 웃겠는가.<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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