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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권력층 세대교체 가속/전기침 외교부장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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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권력층 세대교체 가속/전기침 외교부장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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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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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리 둘 동반 퇴진/50대 기술관료 부상/류화추·탕자쉬안·우이 후임 부장에 물망12일 첸지천(전기침·70) 중국 외교부장의 사임 발표는 최근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진행중인 「녠칭화」(연경화·세대교체)작업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제4세대」로 불리는 50대 기술관료들이 대거 부상하고 70대 전후의 부총리·부장급 「실무형 간부」들이 「정치형 관료」로 행정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이 분분했다.

특히 전부장과 관련, 지난달 26일 제15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15기 2중전회)에서 퇴진이 결정됐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당·정·군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행정개혁에 맞춰 부총리급이 현재 6명에서 4명으로 축소될 전망인데 전부장이 스스로 퇴진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전부장과 함께 쩌우자화(추가화), 장춘윈(강춘운)등 70대 전후의 부총리들이 대거 퇴진하고 원자바오(온가보)당중앙위원회 서기처 서기, 우이(오의) 대외경제무역합작부장 등이 부총리로 발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후진타오(호금도)정치국 상무위원이 국가부주석에 선임되고 「제4세대」가 부장에 전원배치될 경우 2002년으로 예정된 젊은 세대로의 권력승계의 토대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전부장의 퇴진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부총리, 정치국원을 겸하고 있는 전부장의 향후 거취와 관련해 부총리직 유지, 국가부주석 선임, 정치국원으로의 퇴진 등 세가지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현재로서는 전부장의 대외적인 신인도를 고려, 국가부주석에 선임될 것이라는 설과 퇴진설이 유력하다.

한편 후임 외교부장에는 현재 「미국통」 류화추 국무원 외사판공실 주임겸 외교부 부부장(차관급), 「아시아 전문가」 탕자쉬안(당가선) 외교부 부부장, 오부장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유주임은 전부장의 최측근으로 덩샤오핑(등소평)생전 정기적으로 자택을 방문, 외교현안을 직보할 정도로 중국 지도부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다. 외교대 영문과 출신으로 북미·오세아니아담당 국장, 외교부 부부장조리(차관보급)를 역임하면서 대미외교를 전담해왔다. 당부부장은 장쩌민(강택민)국가주석의 고향인 장쑤(강소)성 출신으로 상하이(상해)파와 친분이 두텁다.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 공사를 역임한 일본통으로 93년 아시아담당 부부장으로 임명됐다.

또 지난해 15전대 이후 통상외교의 비중이 높아감에 따라 오부장을 외교부장에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오부장은 95년 샬린 바셰프스키 미무역대표부(USTR)부장에 맞서 통상마찰을 매끄럽게 처리, 지도부로부터 높은 신임을 얻었다.<윤태형 기자>

◎전기침은 누구/주은래 이래 중 최고 외교관 평가/천안문사태 등 외교 타개/10년간 ‘중국의 얼굴’ 역할

저우언라이(주은래)이래 중국의 가장 걸출한 외교관으로 평가받던 첸지천(전기침) 중국 부총리겸 외교부장은 6·4 천안문사태와 인권문제, 대만과의 갈등 등으로 곤경에 빠진 중국외교에 활로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1928년 1월 상하이(상해)에서 태어나 불과 14세였던 1942년 상하이 다퉁(대동)대학 부속중 재학시 공산당에 입당, 상하이 공산주의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차오스(교석)는 그의 직속상관이었고 장쩌민(강택민) 현국가주석은 나이는 많았지만 지도를 받는 학생이었다.

49년부터 중공 상하이시 시위원회 위원, 공산청년단(공청단)서기를 역임하다 후야오방(호요방)의 추천으로 1년간 소련 공청단 학교에 유학했다. 이를 인연으로 55년 소련주재 중국대사관 2등비서, 유학생처 부주임, 참사 등을 역임했다. 호가 당총서기에 오르고 교가 당중앙조직부장이 되자 이들은 전을 당중앙위원으로 발탁, 우쉐첸(오학겸)외교부장 이후를 대비한 외교 책임자로 키우고 있었다.

82년 중공 제12기 중앙후보위원에 피선된 후 외교부부부장, 당위 부서기 등을 거친 뒤 88년 외교부장, 당위서기에 취임했고 92년 중앙정치국원으로 승진했다. 93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겸했다.

전부장은 날카로우면서 계파적 색채가 없으며 이데올로기 면에서도 초연했다는 평이다. 좀처럼 화내는 일이 없고 불평이 없다. 러시아어와 영어에 정통하며 불어 독해도 가능하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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