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독자로부터 편지 한통이 날아왔다. 「한나라당 제위」로 시작된 16절지 한장 분량의 이 편지는 총리인준을 거부한 거대야당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 일변도였다. 「57세의 연약한 월급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독자는 『김영삼 전 대통령 혼자 나라를 이꼴로 만들었느냐. 당신들도 분명 공범으로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독자는 『전국민이 화합과 단결을 열망하는 마당에 정치권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분노했다. 정치권에 대한 민심의 현주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극복이란 절체절명의 과제를 떠안은 새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총리인준문제로 홍역을 치르는 모습은 참으로 딱해 보인다. 여야간 협상은 서로의 엇갈린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대통령의 거듭된 호소도 소득이 없었다. 결국 총리서리체제가 탄생했다. 패배한 대선에서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변칙적인 투표방법까지 동원해 총리인준을 거부한 거대야당이나 야당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초 입장을 고수한 여당 모두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태의 책임을 떠넘기는 성명전에다 위헌시비와 표결의 적법성을 놓고 다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10년전, 20년전 정치행태에서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
총리동의안 표결과정에서는 선량집단인 국회가 그야말로 잡인들의 난장판이 돼버렸다. 폭언과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TV로 생중계되고 있는데도 국민들이 이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도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모르는 판국인데 정치권은 여야간, 당내 계파간 주도권다툼으로 허송세월 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어느나라 국회의원들인지 의심스럽다. 정치불안으로 국가신인도가 다시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 뿐만 아니다. 지금 각계각층이 「고통분담」에 신음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정치권이 개혁의 물줄기를 흐려놓고 있다.
정치권의 불감증을 치유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한국전쟁이후 최악의 위기상황이라는 요즘 정치권이 국민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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