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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 연구협력팀장 이영희(여성의 새 길을 연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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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 연구협력팀장 이영희(여성의 새 길을 연다:1)

입력
1998.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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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경영 둘다 아는 1세대 여성/80년 기술고시 합격이후/전화국 기계부장 등 현업과 벨기에 유학경험 통해/기술과 경영 접목 성공/95년 한통 첫 여성국장 승진/“남녀평등 요구할게 아니라/차별자체 없게 만든다” 신념여성의 능력이 경시되거나 사장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40.2%가 여성이지만 일하는 여성들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59.9% 수준(97년 여성백서)이다. 여성들이 주로 하위직, 저임근로자로 종사할뿐 정책결정이나 지도자적 지위에 오른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조사한 「여성권한척도 국가별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2위에 머물고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능력개발을 통해 새 길을 열고 우리사회의 변화를 선도해온 여성들을 차례로 소개한다.<편집자주>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술을 모르는 경영자는 진정한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극단론까지 선진국에서는 나오고 있다.

 95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한국통신의 1급 국장으로 승진한 이영희(41) 연구개발본부 연구협력팀장은 기술과 경영을 두루 아는 기술경영자의 여성1세대이다. 기술고시 출신으로 전화국 기계부장이라는 현업을 거쳤고 우리나라 통신사업이 전화에 치중해 있을 때인 87년 벨기에 브뤼셀대학에서 전산망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아 그 후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컴퓨터통신 수요에 대응하는 기술을 익혔다. 현재는 특허관리 대외협력 인력개발 등을 통해 한국통신내 연구업무를 지원하고 산업체와 연결하는 일을 맡고 있다. 사원 가운데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을 선정, 벤처기업화하는 업무도 이 팀에서 한다. 요컨대 기술과 경영을 두루 알지 못하고서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힘든 자리이다.

 기술경영분야에서 그가 늘 첫 자리만 달려온 것은 아니다. 79년 기술고시에 친구와 함께 응시했다가 친구만 홍일점합격(정태현씨)했고 80년 고시에 합격한 뒤에도 기술경영자보다는 연구직을 희망했다.

 81년 영동전화국 기계부장으로 첫 부임했는데 불과 24세의 나이로 아버지뻘 되는 과장들과 일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경영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다. 『기술적인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술자리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다 결정하고 사무실에서는 확인만 하는 사회분위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소외감에 분노도 했지만 점차 사람들이 의사결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현장과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현실을 무시하고는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다. 특히 기술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단순작업이 많으므로 더 감정적이라는 사실, 이들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아무리 신기술을 개발해도 현장에서 써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그는 『내가 상대방을 도와준다는 사실이 명확히 인식돼야 조직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가장 힘든 일을 떠맡기 시작했다. 그가 85년 잠실전화국 기계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잠실전화국장이던 김태무(58) 전무는 『사실 업무 자체로는 남녀차이가 없다. 부하를 통솔하는 능력이 여자에겐 떨어진다고 생각해왔는데 이팀장은 그걸 타파했다』고 들려준다. 당시는 신정때면 사흘간 업무를 쉬는 대신 부장들이 당직근무를 했다. 『대개 여자는 빼주는데 신정 며칠 전에 이팀장이 찾아왔다. 나도 당직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 자체를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이팀장의 특징이다』라고 말한다.

 이팀장이 본격적으로 기술과 경영, 양쪽에 재주를 보인 것은 87년 벨기에 연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유럽을 휩쓸던 컴퓨터전산망 TCP­IP에 관련된 프로그램 개발을 브뤼셀대학에서 공부했다. 여기서 익힌 전문지식은 그가 돌아와 서울통신운용연구단 교환연구 3부장이라는 연구직으로 승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업무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식 교환기인 TDX교환기의 기능을 개선해 더 쓰기 편하도록 만드는 업무. 94년 대전엑스포 기간에 한국통신은 이 교환기로 국제행사를 무사히 치뤘는데 그 뒤에는 개막 며칠 전에 발생한 교환기 장애를 부원들과 함께 철야작업하며 고친 이팀장이 있다.

 하지만 정작 이팀장 자신은 벨기에에서 익힌 것이 기술보다는 「인간관리」라고 한다. 『당시 우리사회는 업무가 중복되어 내부경쟁이 심하고 이 때문에 필요없는 중복투자, 과잉업무가 있었는데 선진국에서는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하고 그 역할들이 전체 안에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국민들이 질서를 잘 지키고 긍정적 합리적으로 일하는 것 자체가 조직을 강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후 돌아와 맡은 연구업무도 『혼자서는 못한다. 여러 사람이 가진 재능과 기술력을 잘 끌어내는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하게 했다.

 이 때문에 이팀장의 부하들은 『일이 효율적으로 되는 방안을 생각하고 빨리 결정을 내려주기 때문에 일하기가 편하다』고 말한다.

 현재 이팀장의 직속상사인 이용경(55) 연구개발본부장은 『어그레시브하고 빠르고 리더십이 있다』고 그를 말한다. 「어그레시브」란 『일을 마다않고 찾아서 한다는 뜻』이라고.

 이팀장은 92년 생각보다 승진이 늦어진다고 생각되자 밤 12시까지 사무실을 지키며 공부를 한 끝에 전기통신분야 기술사 자격증을 따내기도 했다. 『여자는 남보다 분명한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며.

 한국통신은 이달 초 인사에서 2급 여성부장 3명을 승진시켰다. 이팀장의 선·후배 모두 『이팀장이 잘한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남편은 기술고시 3년 선배인 임순철(43) 한국통신 기업영업단 기획팀장. 벨기에로 연수를 갈 때 두고 떠나 눈물 꽤나 빼게 했던 두 아들이 있다.<서화숙 기자>

□약력

80년      항공대 통신공학과 졸,기술고시(통신) 합격

81∼85년   영동·잠실전화국 기계부장

87∼89년     벨기에 BTM사 근무

89년        브뤼셀대 전산학 석사

91년        한국통신 서울통신운용연구단 교환연구3부장

92년        전기통신기술사 자격 취득

95년        한국통신 서울통신운용연구단 운용지원2국장

96∼97년 6월  미국 미시건주립대 파견근무

◎후배에게 한마디/“비전을 갖고 전문성을 키워라”

 기술경영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이팀장은 다섯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남성은 관리능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여성은 전문성을 가져야 경쟁력이 있다. 자기만의 기술을 가져야 하는데 『이때 기술은 꼭 과학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이팀장은 말한다. 그 사람이 가장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면 어떤 내용이든 좋다. 고객관리에 남다른 재치가 있거나 주부소비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도 탁월하면 전문성이 된다. 요컨대 남들은 흉내내지 못할 경지에 도달한 영역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

 두번째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어야 한다. 세계 시장동향도 알고 시사에도 밝아야 한다. 세상은 이렇게 바뀔 것인데 나는 앞으로 수년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어떤 상태에 놓이고 싶은가,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세번째는 상사 동료 부하에게 잘하라. 조직은 서로를 도울 때 성장하는 것. 『특히 동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우라』고 말한다. 동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자리잡으면 그 동료도 나를 돕는다. 흔히 성공을 위한 인맥을 쌓는다고 각종 모임에 열심인 사람이 많지만 결국 회사에서 그를 평가해줄 사람은 상사 동료 부하뿐이다. 『마당 쓸 때 온 동네 안 쓸고 매일 옆집만 쓸어줘도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소문나는 것과 같다』고.

 승진과 연수를 위해 의사표시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지만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된다. 설득을 해야 하며 설득할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남자들과 잘 지내고 여자들을 협조자와 지지자로 만들어야 한다.

◎기술고시 출신 여성들/한해 1∼2명 합격 ‘하늘에 별따기’

 기술을 이해하는 고급공무원(5급)을 양성하기 위해 마련된 기술고시는 뽑는 숫자도 적지만 여성합격자수는 더욱 적다. 55년 제정 이래 77∼80년과 93,97년을 제외하고는 50명 넘게 뽑은 적이 없는데 여성은 97년 4명이 뽑힌 것이 이례적이라 할 정도였다.

 최초의 여성 기술고시 합격자는 75년 건축직렬에 응시한 정평란(48·건축사·경원전문대 건축과 교수)씨. 한양대 공대 건축과 출신인 정씨는 당시 서울시청 조경과에 근무하던 7급 공무원. 고시합격후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건축계장으로 부임, 지하철 역사 건설과 유지관리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선배여성공무원의 느린 승진에 한계를 느끼고 79년 학자로 돌아섰다.

 두번째 합격자는 79년 통신직렬에 응시한 정태현(42)씨. 항공대 통신공학과 4학년때 합격한 정씨는 성북전화국 기계부장으로 부임했으나 현재는 주부. 그 이듬해 이영희씨가 합격했다.

 이어 86년에 서울대 건축공학과 4학년이던 장경순(34·조달청 시설국 시설서기관)씨가 홍일점 합격자로 기록됐다. 장씨는 97년 토목·건축분야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서기관에 승진되는 기록도 세웠다.

 87년은 2,947명 가운데 25명을 선발,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해. 이해 11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오히려 예년보다 많은 여성 2명이 합격했다. 이화순(36·경기도 감사담당관실 기술감사계장) 김진숙(38·건설교통부 도시계획과)씨가 그 주인공이다.

 91년, 94년에 각각 환경직렬과 전산직렬이 신설되면서 여성합격자는 늘고있다. 92년 1명, 94년 1명, 95년 1명, 96년 2명, 97년 4명이 양 직렬에 합격했다. 화공 토목 전기직렬에는 지금까지 여성합격자가 한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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