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계의 큰손 「조지 소로스」란 이름은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그가 운영하는 헤지펀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더라도 김대중 대통령과 친분이 각별하고, 마음먹고 한국에 투자하면 몇배, 몇십배의 외국자금을 끌어올수있는 영향력있는 인물이란 정도는 상식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위해 최근 또 다시 방한한 그는 국내 대재벌 총수들을 두루 만나며 국가원수 못지 않은 대접을 받았다. 지금은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어느 나라 정상과도 즉시 통화할수 있다고 호언하지만 92년 10월 영국 파운드화 위기이전만 해도 그는 무명의 금융인이었다. 당시 소로스는 지난해말 우리나라가 그랬듯이 평가절하 압력을 무시하고 외환보유고를 소진해가며 고환율을 유지하려던 영국 파운드화를 집중공략, 순식간에 10억달러를 챙기면서 국제 금융계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그는 외환거래 자체를 투기대상으로 삼는 대형 환투기를 처음 선보였고, 그 환투기꾼에 영국중앙은행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소로스의 등장은 금융자본 힘이 산업자본을 압도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현재 연간 세계 교역량은 3조달러에 이르지만 국제적인 자본거래는 하루에만 1조2,000억달러가 국경도 없이 세계를 떠돌 정도로 엄청나다. 무역전쟁이 아니라 금융전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군사력으로 이미 세계를 제패한 미국은 금융분야에서도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과 동남아 외환위기에서 보았듯이 뉴욕 금융가인 월가는 한 나라의 운명까지 한 손에 쥐고 주무르고 있다.
새정권 출범이후 우리 금융계는 전례없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됐다. 돈줄이 막히면서 은행장의 싸인하나가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가운데 신정권이 은행을 기업구조조정의 「감시자이자 집행자」로 내세워 서슬퍼런 칼날까지 쥐었다. 과거에는 은행장도 만나기도 힘들었던 재벌총수들이 은행이 마련한 재무구조 개선협약 설명회에 고분고분 참석하는 모습에서도 힘의 변화를 실감한다.
그러나 금융계가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만큼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압력과 청탁이 있으면 부실기업에도 몇조씩 내놓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수출신용장을 받아놓은 기업대출도 외면하는게 우리 금융의 현주소이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임원에게만 돌린 은행주총은 금융계가 변화의 의지마저 없음을 말해준다. 금융계는 지금 남의 개혁을 감시할때가 아니라 스스로를 개혁할때다. 소로스는 방한중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위기는 외환때문이 아니라 금융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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