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부실덩어리인 오늘의 이모양 이꼴로 된게 무엇 때문인가. 부실대출을 양산한 관치금융, 이를 뒷받쳐 준 낙하산식 관치인사에서 비롯되었던 게 아니던가. 은행인사에 간여 않고 자율인사를 보장하겠다던 김대중 대통령의 거듭된 공언에도 불구하고 이번 은행주총에서도 구태의연한 관치인사가 불식되지 못한 채 공공연히 되풀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부의 금융개혁의지가 그야말로 말뿐이었음을 실감케 한다.
IMF체제 이후 처음 맞는 올해 정기주총에 대한 일반 국민의 기대는 은행이 책임의식을 갖고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자율경영풍토의 정착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구습을 못 버린채 기대를 짓밟았다.
서울은행의 경우 27일 주총에서 재정경제원이 지명한 인사를 전무와 이사로 선임하라는 일방적 통고를 받고 내정했던 인사내용을 급작스레 바꿔야 하는 홍역을 치렀다. 그것도 주총 5분전 재경원 사무관 1명을 총회장에 보내 느닷없는 요구를 하는 바람에 주총이 지연되고, 주주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옆방에서 기다리던 전무내정자는 그냥 돌아가는 촌극을 빚었다. 은행 외부의 국제금융전문가로 임원을 보강하려 했던 은행장은 사태가 이렇게 되자 사의를 밝혔다가 내부 만류로 철회했다는 뒷얘기다. 제일·국민은행에서도 유사한 행태의 인사가 있었다고 한다.
관의 입김이 위력을 갖고 작용한 흔적은 감사선임등의 과정에서 여타 은행에서도 적지않다는 게 은행가 주변의 얘기들이다.
임원들에게만 책임을 지우고 보다 큰 책임을 져야할 은행장들이 대부분 유임된 빗나간 자율인사의 결과에 대해서는 청와대 대변인의 경고성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부실덩어리인 은행의 구조개혁 없이 앞으로 닥쳐올 숱한 경제의 난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정부가 더 잘 안다. 효율과 능력을 중시하고 책임경영체제의 구축을 서둘러야 할 정부가 구태를 답습하고 있음은 유감이다.
훼손된 은행의 자율인사는 새 정부가 반드시 시정하고 복원시켜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