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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IMF/정병진 사회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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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IMF/정병진 사회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8.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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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중견업체 K회사의 뉴욕주재원으로 있다가 1월 중순 귀국했다. IMF 때문에 중도 귀국한게 아니라 3년 남짓한 임기를 다 채우고 들어왔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나는 꼬리만 밟혔다』고 말했다. B가 94년 말 한국을 떠날 때 환율은 달러당 780원. 귀국할 때는 1,780원이었다. 출국 때 서울의 아파트를 9,000만원에 전세를 주고 4,000만원의 은행 융자를 해결(연리 12%)했다. 귀국 때 그 아파트에 입주하려고 궁리해보니 부채 4,000만원(금리 18%)과 뉴욕주재 당시 미국에서 꿔다 썼던 5,500달러가 부족했다. 「입주비용」을 계산해보니 「4,000만원+5,500달러(940만원)+금리 증가분」이었다. 그가 다니는 K사는 IMF를 이유로 두달 전부터 월급은 지급하되 2개월에 한번씩 나오던 보너스(200%씩)는 「생략」한 상태였다. 은행 융자금은 이자만으로도 B의 월급을 능가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이삿짐이 들어오던 날 B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소주 반병을 걸쳤다. 더이상 마시면 아내와 딸이 「취중발언」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IMF극복을 위한 제언」, B는 모두발언을 했다.

 『꽃장롱을 내놓겠다』 아내가 말했다. 미국에서 한달에 140달러씩 24개월 할부로 샀던 것이다. 아내는 미제 냉장고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쓰던 국산 중고품과 바꾸면 조금 더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빠, 제 첼로를 국산으로 바꿀래요』 중학교에 들어갈 딸이 말했다. 전공을 할 것도 아닌데 비싼게 필요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연습하기를 싫어했던 딸은 오히려 잘됐다는 표정까지 보였다.

 B는 할 말이 있을 수 없었다. 똑부러지게 내놓을 것도 없었다. 호주머니 속에서 담배곽이 잡혔다. 『내일부터 담배를 끊겠다』 …딸이 박수를 쳤다. B는 더없이 「소중한 것」을 포기했지만 가계에 도움은 안될 듯 했다. 거실 벽에 있는 손때묻은 퍼트가 보였다. 『앞으로 일요일엔 골프를 하지 않고 당신을 따라 교회에 갈게』…아내가 가만히 B의 손을 잡았다.

 B는 아내의 손바닥을 벗어나 밖으로 나갔다. 소주 한잔을 시켜놓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B가 조금전에 들렀던 그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그래도 졸라맬 허리가 있는한 IMF는 좋은 것이야』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는 다음날 나를 또 불러냈다.

 『야, 너 우리 막내알지』 『어젯밤 그 꼬맹이가 잠도 안자고 나를 기다리더라구』 『돌고래 인형을 내놓겠다는 것 아냐, 다섯살짜리가…』

 나는 그 때 만큼 B가 부러운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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