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미국간에 인터넷을 둘러싸고 한판 격돌이 벌어질 모양이다. 미국의 인터넷에 대응하기 위해 한때 독자적인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개발을 적극 시도했던 유럽연합은 최근들어 그같은 전략을 사실상 포기했다.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세계화」가 돼버린 인터넷에 대항하는 것이 부질없는 힘의 소모라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이에 따라 인터넷을 거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터넷의 운용에 유럽적 색깔과 입김을 불어넣기 위해 전투적 자세마저 가다듬어 왔다. 인터넷을 개발한 미국측이 가만 있을리 만무하다.
유럽의 「한발 걸치기」를 가당치 않게 여겨온 미국은 급기야 인터넷의 주도권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 「칼」을 뽑았다. 클린턴정부는 최근 인터넷의 전반적인 운용및 관리방식을 전환하기 위해 현행 시스템의 문제점 조사연구방침 및 대안을 담은 지침을 발표했다.
인터넷의 세계화에 따른 개선이라는 명분하에 제시된 이 지침의 핵심은 인터넷의 주소배정 방법과 관리기관의 변경에 있다. 상업 및 기술 부문에서 인터넷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제적 단체들을 대표하는 민간위원회로 운영되는 미국관할의 비영리 기구를 창설해서 인터넷 주소배정 등 운영을 관리규제하고 관련분쟁 등을 조정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같은 내용을 발표하면서 유럽연합과 세계 각국정부에 대해 내달 23일까지 입장서를 제출하라고 데드라인까지 일방적으로 설정했다.
유럽연합은 『미국이 세계의 공유물인 인터넷에 대해 배타적 사법권을 행사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유럽연합 15개 회원국들은 27일에도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보통신 장관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측은 미국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인터넷 국제헌장」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 관리운용에 관한 헌법을 전세계가 공동으로 참여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정보통신담당 집행위원은 『우리는 인터넷 전쟁을 벌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지난주부터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대응 조치를 모색하는 등 일전불사할 태세다.
국경없는 세계화, 지구촌 한지붕의 주역인 인터넷이 이처럼 또다른 대결과 갈등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 아이로니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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