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25일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병행」이라는 통치철학의 뼈대를 대내외에 천명했다. 김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면서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실천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통치철학은 역대정권의 공과를 깊이 성찰해 이끌어낸 결론으로 평가된다. 경제를 이유로 민주 발전을 유보한 박정희·전두환정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흐름에 휩쓸려 경제파탄의 원인을 방치한 노태우·김영삼정권의 실패를 각각 거울삼아 모두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그 실현과정에서 서로 조화되기 어려운 속성을 갖는다. 평등과 공정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 효율과 경쟁이 핵심인 시장경제는 자주 상충되기도 한다. 당면한 경제위기는 외화유동성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재벌체제의 고착화, 노동시장의 경직성, 고비용 저효율 등 각종 폐해가 얽히고 설켜 만든 구조적 위기다. 모두가 개발독재와 민주실험이 남긴 후유증이며, 민주주의를 앞세운 정치논리가 시장원리의 작동을 막아 폐해를 증폭시킨 부작용이기도 하다.
만의 하나 민주주의와 경제의 병행 발전이 경제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의미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평등과 분배를 앞세운 경제체제는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이미 결론이 났다. 인기에 영합한 아르헨티나의 민중주의는 경제와 민주주의를 둘다 지키지 못한 채 군부독재를 불렀다. 반면 대처 총리의 노조 견제와 민영화를 통한 영국병 퇴치, 레이건 미국대통령의 리스트럭처링(구조조정)과 규제완화는 시장 원리에 충실해 성공을 거둔 사례로 지적된다. 대처 총리나 레이건 대통령이 눈앞의 표를 의식했다면 고실업의 고통을 강요하는 정치도박을 감히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IMF상황을 맞은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 회생과 새로운 발전전략의 모색을 위해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야 할 입장이다. 산업화를 위해 개발독재를 강요한 박정희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김대통령은 확고한 비전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집권여당은 여소야대의 부담을 안은 소수연립정권이다. 곧 있을 지방선거, 2년 남은 총선을 맞아 표의 유혹에 의연해지기 어렵다. 흔히 다수는 침묵하며 소수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지만 지난해말 한나라당은 증시 부양을 이유로 종합과세대상자 3만명의 이익을 위해 금융실명제의 골격을 흔들어 4,000만의 기대를 외면한 결과, 정권도 증시부양도 모두 놓치지 않았는가.
집권여당은 5년 임기내 개혁의 과실을 따리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대처 총리나 레이건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개혁의 효과는 10수년 지나야 나타나는 반면 개혁의 고통과 저항은 곧장 불거져 표와 인기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새 정부는 표와 인기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시장경제 회생과 개혁에 매진, IMF 국난을 극복하고 경제의 토대를 재건한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새 정부의 노력을 결코 외면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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