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의 졸업식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다. 널찍한 캠퍼스엔 졸업생과 가족, 그리고 이들이 타고온 자동차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도 자동차와 사람이 지난 해 보다 줄었고 축하 분위기도 덜하다는 것이었다. 모두 IMF 한파 탓이라 고 했다. 금년도 졸업생들은 출발선상에서부터 찬바람에 내몰리고 있었다. 졸업식이 시작됐는 데도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식장에 들어가지 않고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밖에서 서성거렸다. 답답한 분위기가 감돌아 왜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식장엔 박사, 석사학위를 받는 사람만 전부 들어가고 학부 졸업생들은 대표들만 참석한다는 대답이었다.
졸업식의 주인공은 바로 이들인데 몇년 전부터 주인없는 졸업식이 정착됐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아무리 자리를 마련해 놓고 참석을 독려해도 하지 않는 것이 풍조처럼 됐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날 단과대학이나 과별로 따로 시간을 정해 별도의 졸업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졸업식 분위기가 옛날만 못한데 올해는 IMF 한파로 더 더욱 그렇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졸업식장의 풍속도라고 할 부모에게 사각모자를 씌워주고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거나 친구들이 졸업생을 떠들썩하게 격려하는 흥겨운 모습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IMF 한파로 취직된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졸업한다고 신이 날 수 있겠느냐는 반문엔 할 말이 없었다. IMF가 아니더라도 지방대학은 불리한 점이 많은데 올해는 시험볼 자격조차 얻기가 힘들었던 것이 웃음을 잃은 졸업식의 원인이란 푸념이었다. 서울의 대학이라고 금년엔 크게 나은 것도 없지만.
이 때문인지 총장의 축사도 힘이 없었다. 사전에 배포된 축사에는 IMF 시대란 한파 속으로 졸업생을 내보는 안타까운 마음이 포함돼 있었으나 막상 축사를 읽을 때는 이 부분을 건너 뛰었다. 졸업생들의 무거운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인지 사회에 나가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말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국도 따라 시골을 오가는 동안 여러 저수지에서 낚시꾼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예년에 없던 일이었다. 얼음낚시라면 몰라도 아직 물낚시는 철이 이르다. 엘니뇨현상으로 봄날씨가 이어지고 있다지만 아직 붕어의 입질이 시원스러울리 없다. 그런데도 물가에 낚시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이나 찬바람 속에 교문을 나서야 하는 졸업생들의 마음이나 크게 다를리 없으리라.
김대중정부가 출범했다. 때가 때인지라 웃음 잃은 졸업식처럼 정권을 잡았다고 웃을 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다급한 불은 껐지만 외환위기는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다. 3월위기설 등 아직도 불안한 그림자가 맴돌고 있다. 이러한 위기설이 나올 때마다 국민들의 가슴은 철렁하다.
정부나 졸업생이나 첫 출발은 힘차야 한다. 정부는 IMF 위기 극복을 힘차게 다짐하고 있지만 졸업생들은 학교문을 나선다고 하지만 당장 갈 곳이 없다. 출발하는 순간부터 맥이 빠져 버렸다. 의욕이 날리 없다. 남은 것은 이상과 철학을 잃고 박탈감 속에서 방황하는 일 뿐이다.
젊은이들이 웃음을 잃고 박탈감에 빠져 있으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 지금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지난해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정가에 유행어처럼 나돌았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기성세대도 그러하겠지만 이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더 크다.
젊은이의 활기를 받아주지 못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젊은이는 일터의 윤활유같은 존재다. 각 기업체는 IMF 시대란 이름 아래 직원들을 해고할 줄만 알지 젊은이를 받아들이는데 인색하다. 채용을 내정한 사람까지 매정하게 내몰고 있다. 어쩌면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지도 모르는데 그러하다.
정부부터 이 문제 해결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작은 정부도 좋지만 머리만 크고 하체가 부실한 「짱구형」의 작은 정부는 별 의미가 없다. 머리를 보다 작게하고 젊은이들을 받아들여 하체가 튼튼한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만이 각 기업을 자극해 젊은들이에게 봄날 같은 화사한 웃음을 되찾아줄 수 있다. 이는 새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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