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국회에서 김종필 총리인준안이 야당인 한나라당의 불참으로 처리되지 못한 것은 이날 온 국민의 기대속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 앞날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불길한 단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는 과반의석을 가진 거야의 횡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집권경험이 있는 거야가 수적우세를 발판으로 국정의 장애물이 되는 일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다수 국민들은 거야가 대승적 차원에서 새정부의 출발을 돕기를 내심 바랐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은 이런 국민적 기대를 저버렸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갖고 총리인준안에 대한 반대당론을 일사불란하게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본회의 불참을 결의했다. 이로써 총리인준안처리는 일단 무산되고 정국은 상당기간 경색국면을 면키 어렵게 됐다. 결과적으로 조각이 지연됨으로써 새 대통령에 구정권각료가 혼재하는 국정의 파행운영이 불가피하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속에 하루하루를 숨죄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정치가 이래도 되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미래지향적으로 문제해결의 방향타가 되지는 못할망정 지금처럼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는가. 오늘의 경제위기는 과거의 여당인 한나라당에 큰 책임이 있다. 노사정의 뼈를 깎는 노력을 외면하고 국정혼란과 공백을 불러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김대통령은 당선자시절 위기관리능력을 인정받아 세계로부터 상당한 신인도를 얻었다. 막혔던 외화가 다시 유입되기 시작했고 이로써 우리를 옥죄었던 외화난이 숨통을 트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국회가 벌인 정치적 소극은 분명 금도를 벗어난 처사다.
여야지도부는 즉각 협상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여야간에 충분히 절충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우선 한나라당이 국회에 출석, 인준안을 부결시키지 않은 것이 이런 절충의 여지를 남겨 둔 흔적이라고 믿고 싶다. 한나라당이 우려하는 인위적 정계개편에 대한 의혹을 씻어 주면 의외로 돌파구가 쉽게 마련되리라 본다. 예컨대 여권이 야당의원 빼가기와 표적사정으로 야당흔들기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있다면 야당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데 대해서 우리는 또 집권당의 정치력부재도 함께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JP총리인준안에 반대한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예고돼 온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집권당 지도부의 책임 또한 결코 면제될 수 없다.
다시 한번 정치권에 당부하고자 한다. 지금은 국가비상시기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은 정치권이라고 못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여야가 공생할 수 있는 슬기로운 타결책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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