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5가족’ 조화의 새틀 짜야/문화관광부,5개 부문 통합 시너지효과 관심/월드컵 축전·문화상품 개발 등 할일 산적/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행정 정착 돼야 「문화의 세기」 21세기의 한국문화를 선도해야 할 문화관광부는 제대로 그 기능을 다할 수 있을까. 문화 체육 청소년 관광업무를 맡았던 문화체육부가 문화관광부로 재편되면서 해체된 공보처의 신문·방송업무까지 흡수했다. 문화관광부? 김대중 새 대통령이 대선기간에 공약한 문화부 독립을 기대했던 문화예술계는 불만을 감추지 않으면서 이런 기구로 과연 「문화선진국」을 이룩할 수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앞으로 맡아야 할 일은 2000년 기념사업과 2002년의 월드컵 문화축전등 각종 이벤트로부터 문화경쟁력을 높이는 고부가 문화상품 개발, 문화자치 정착, 문화와 교육의 접속등 다양하다. 전반적으로 문화정책의 틀을 새로 짜야 하는 것이다.
문화관광부라는 이름을 붙인 논리는 포괄하게 된 업무가 모두 「광의의 문화」에 속한다는 것이다. 문화체육부시절에도 정부는 비슷한 논리를 펴면서 관련업무의 유기적 통합과 조화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은 따라서 「광의의 문화」가 조직의 기형화를 호도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김문환 문화정책개발원장은 『문화 체육 관광 청소년 매체(신문·방송)등 「한 지붕 다섯가족」을 한 가족으로 묶을 수 있는 정책의 틀을 개발하고 「광의의 문화」개념을 정립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원은 하되 간섭을 하지 않는 민간주도의 문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핵인 문화예술이 위축되지 않을까」하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 확정된 추경예산에서 문화예술예산이 대폭 삭감돼 문화비전2000 기념사업, 새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계획등 국가적 문화사업에 차질이 생겼다. 또 몇년간 지속될 긴축재정은 문화예술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차기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도 우려를 갖게 한다. 100대 과제중 문화관련 항목은 66, 67번째로 제시된 「문화예술 창작활동을 활성화하고 향수기회를 확대」하며 「문화와 관광산업을 21세기 유망산업으로 육성」한다는 선언 2가지가 전부였다. 세부 추진계획으로 제시된 문화비전2000 중·장기 실천계획 수립은 종전의 정책을 답습한 것이며, 영상물 심의기준과 제도를 개선한다는 것도 대선 당시의 완전등급제공약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밖에 ▲문화활동 인·허가 규제의 대폭 완화 ▲문화예술인의 활동지원 강화와 활동기반의 확충등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내용만 담겨 있다.
문화계는 대선때 「문화대국 건설」을 내걸었던 김당선자의 공약인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 폐지 ▲정부예산 1% 이상의 문화예산 확보 ▲문화산업 특별자금설치등 구체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IMF한파로 얼어붙은 문화계를 위해 당장 해결해야 할 일도 많다. 나춘호 출판문화협회장은 빈사상태의 출판계가 회생할 수 있도록 특별규정을 만들어 출판사에도 중소기업청의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촉구했다. (주)명필름 대표이사 이은씨도 뿌리가 뽑혀가는 한국영화계를 위해 각종 벤처금융의 투자확대 유도조치를 주문했다.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 장관에 누가 취임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김용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사무총장은 『어떤 인물이 임명될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그 결과는 새 정부의 문화정책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철학과 비전을 갖고 장기적 문화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문화전문가가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장관은 정책개발보다 각종 행사에 참석하기에 바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사정은 문화관광부가 되면 더 심해질 수 밖에 없게 됐다.
경위야 어쨌든 이제 다시 「광의의 문화부」가 출범했다. 새 정부는 공약대로 「세계 속의 한국문화 창출과 문화대국 건설」을 위해 제대로 된 밑그림을 그리고 거시적인 정책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서사봉 기자>서사봉>
□국민의 정부 문화캘린더
98 문화비전 장기계획 수립
98.4 국립김해박물관 완공
98.5 아태경제협력체(APEC) 국제관광회의
98.8 한국전통문화학교 착공(99년 개교)
98.8∼10 서울국제연극제
98.9∼10 한국관광정보축전,유네스코 국제무용축제
98.9∼11 경주국제문화엑스포
99 표준국어대사전 발간
99 국립 춘천·제주박물관 완공
99 국립 대전박물관,삼한박물관(나주) 착공
99.1∼2 제4회 동계아시아드
99.9∼10 국제관광엑스포
99∼2001 문화비전 2000 기념사업
2000 종합영상지원센터 완공(97 착공)
2000.8 광주비엔날레
2002.4 광주비엔날레
2000.6∼7 월드컵 축구대회
2002.9∼10 부산아시아경기대회
2002 파주출판문화단지 1단계 조성
2003 새 국립중앙박물관 완공
97∼2006 관광진흥 10개년계획기간
91∼2002 창덕궁 복원완료
90∼2009 경복궁 복원완료
97∼2010 문화정보화사업 추진
98∼2001 만화의 도시(춘천) 조성
98∼2002 제2차 5개년 문화재 정비사업
98∼2007 국어정보화사업
◎문화행정 변천사/90년부터 3차례 부명칭 바뀌며 정책 ‘왔다갔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문화정책이 추진된 것은 90년 1월 문화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노태우 정권의 선거공약사항이었다. 그 전까지는 독립영역으로서 문화정책의 개념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부처의 이름에 문화라는 말이 나타난 것은 68년 발족한 문화공보부가 처음이다. 그러나 문화부가 독립되기까지 문화공보부의 예산은 한강다리 하나 놓을 정도에 불과했고 공보 및 문화재 관리를 뺀 문화예술 행정비는 3분의 1에 불과했다.
문화부 출범은 이런 푸대접이 끝나는 신호로 반갑게 받아들여졌다. 초대 이어령 장관은 최초로 문화발전 10개년계획을 세우고 「문화예술의 해」지정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문화바람」을 일으키는등 의욕적으로 한국문화정책의 틀을 짰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연구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어 이수정 이민섭 주돈식 김영수 송태호씨 등 정치인 또는 비문화인출신이 부임했지만 돋보이는 정책적 성과는 거의 없었다.
문화부는 93년 문화체육부로 개편됐다가 이제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문화관광부로 팻말을 고쳐 달게 됐다. 90년부터 8년간 세 차례나 명칭이 바뀌고 그 과정에서 7명의 장관(새 정부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까지 합치면 8명)을 맞은 것은 문화정책이 기조없이 표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역대 대통령이 문화입국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대통령」은 없었다. 외국의 원수들이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연극 전시회관람을 즐기며 문화예술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부러운 일일 뿐이었다. 94년 예술의 전당 신년음악회에서 벌어졌던 웃지 못할 사건을 돌이켜 보자.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각료와 주한 외교사절등 귀빈을 초청한 이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에서 느린 부분을 잘라내고 연주했다. 지루하지 않게 프로그램을 짜라는 청와대측 주문이 빚은 촌극이었다.<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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