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은행의 정기주주총회가 26∼28일 일제히 열린다. 정권교체기와 겹친 올 주총에서 교체대상 임원은 은행장 10명을 포함, 100명이 훨씬 넘는다. 주초인 23∼24일에는 은행장이 사퇴의사를 밝혔거나 행장·감사의 임기가 만료된 일반은행의 행장과 감사후보 추천위원회도 열린다. 이번 은행주총은 여러가지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예년같은 승진·영전잔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요 시중은행은 이미 임원들의 일괄사표를 받아 임기와 관계없이 책임경영과 경영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경위야 어떻든 상당수 은행임원들은 방만한 외환운용과 눈덩이같은 부실대출로 IMF 국치를 부른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이번 주총은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물갈이를 요구하는 여론을 반영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선발 시중은행들은 13명이던 비상임이사를 10명∼12명으로, 상임이사도 최고 3명까지 줄이기로 결정했다. 더욱이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정지태 상업은행장이 용퇴를 결정, 그 파문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주총에서 새로 선출될 은행장과 임원들은 당장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 은행산업의 구조조정, IMF 상황에서 은행이 살아남기 위한 기구축소와 인력감축 등 자구노력을 추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손에 피를 묻히는 악역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미 이달중 은행구조조정 특별대책반을 구성, 부실채권 정리와 인수합병·매각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파산까지 포함하는 「빅뱅」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 정부가 은행권에 기대하는 수준도 예사롭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임원을 선출하고 경영에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은행인사 불개입 방침을 거듭 천명했다. 역대 정권이 출범때마다 은행인사 불개입을 강조했으나 번번이 수사에 그친 전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김당선자는 『대기업의 빅딜(사업교환)을 비롯한 구조조정은 은행이 중심이 돼서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우리 경제의 현안인 재벌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의 역할에 기대한다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이번 주총을 통해 은행 임원들은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의 피해자이자 협조자였고, 부실경영의 장본인이었던 과거를 씻어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자율은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이번에도 한보사태처럼 몇몇 은행장은 「재수없어」 퇴진하고 나머지 임원들은 승진잔치로 희희낙락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매우 불행한 사태가 올 것이다. 뼈를 깎는 자정을 통해 국민 대다수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 경우 또다시 정권의 개입을 부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IMF 시대가 요구하는 뱅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인재가 누구인지는 은행이 스스로 가장 잘 안다.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한 인사혁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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