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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비리/한 대학 절반이 ‘족벌교수’(교수비리 현주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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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비리/한 대학 절반이 ‘족벌교수’(교수비리 현주소:하)

입력
1998.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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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끼리 친인척 교환채용/실습비 유용·의보료 전용은 ‘기본’/“공금이 쌈짓돈” 수십억대 횡령도 교수비리는 학사행정 전반에 걸쳐 자행되는 재단비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상당수 교수들은 재단의 횡포에 맞서 교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적지않은 교수들은 재단측과 결탁, 비리를 더욱 확대 재생산한다.

 재단비리는 교수와 교직원 인사를 중심으로 무차별하게 학사행정에 간섭하거나 학교예산과 자금을 불법유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같은 비리는 재단이사장의 친인척과 측근 교수들의 「공모」로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인사전횡

 「L1교수­이사장 아들, L2교수­이사장 사위, L3교수­이사장 큰 조카사위, L4교수­이사장 작은 조카사위, L5교수­이사장 조카, L6교수­이사장 큰 조카 며느리, L7교수­이사장 작은 조카 며느리, A교수­이사장 동서, H교수­이사장 큰 며느리, C교수­이사장 작은 며느리, K교수­이사장 외손자, G교수­이사장 처조카 사위…」 지방 모 전문대 교수들의 혈연관계는 재단족벌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학교 재단이사장은 모든 교직원의 인사권을 장악함은 물론 교수직을 매매하기도 한다. 이렇게 족벌과 핵심측근으로 연결된 교수가 절반에 가까운 50여명에 이른다. 교수회의는 「패밀리(가족)회의」일 수 밖에 없다

 노골적인 인사전횡을 눈가림하기 위해 최근에는 이사장끼리 서로의 친인척을 물물교환 형태로 채용하는 신종수법도 나타났다. 모대학 이사장은 자신과 잘 알고 지내던 학교법인 이사장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그의 딸을 교수로 채용해 잡음이 일었다.

 심한 학내분규를 겪고 있는 덕성여대의 경우 박원국 전 이사장이 교원 승진대상자를 사전에 결정하는등 인사에 절대적 권한을 휘둘렀다. 94년부터 최근까지 대상자 90명 가운데 28명만 선택적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이다.

 모 사립대 교수는 『설립자가 이사장으로 있는 소규모 대학은 대부분이 전근대적인 족벌체제를 구축하고 있어 「패밀리」에 속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된다』며 『교수로 재직하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법인 및 학교재산 전용

 재단이 법인과 학교의 예산과 자금을 불법전용하는 수법은 지극히 교묘하고 다양하다. 법인 부담금을 학교예산으로 납부하거나 실험실습비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 관례이고, 예산집행을 미뤄 남은 돈을 적립금으로 처리하는 등 고도의 지능적 수법까지 동원한다.

 a학교법인은 94∼96년 교직원 연금부담금 1억8,700여만원을 부담능력이 충분한데도 전액 학교예산에서 지출, 결과적으로 교육여건의 부실화를 초래했다. b학교법인도 94∼96년 교직원 의료보험료 1억8,300여만원을 학교 예산으로 지불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교예산의 편성과 집행 과정에도 갖은 불법이 동원된다. c대학은 학생 실험·실습비를 집행하면서 총예산의 40% 이상인 1억여원을 사실상 수업이 종료된 4·4분기에 집중 집행했다. 교육에 필요한 기계·기구 구입비도 96년 3·4분기까지 예산액 15억3,000여만원 가운데 4억여원 밖에 집행하지 않는 등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사용해야 할 돈을 임의로 이듬해 예산에 이월했다.

 교육부 감사관계자는 『건물 신축과 기자재 도입을 위한 목적으로 예산을 이월하거나 적립금을 남기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일부 대학은 장부조작 등을 통해 학교예산을 유용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험실습비를 강사료나 행사비 명목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d대학은 실험실습비 집행액 10억여원 중 6억2,000여만원을 강사료 및 학과 행사비 등으로 불법 전용했고, e전문대는 실험실습비 5억2,000만원중 2억7,000여만원을 교직원의 산업체 순회지도 여비 등의 명목으로 사용했다.

◆학교공금 횡령

 학교법인의 기본재산에서 발생한 수익금은 80% 이상 학교로 전출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법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법인이나 학교재산을 이사장 개인소유로 빼돌려 부동산에 투자하고 예금형태로 보유하다 탄로나는 바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f학교법인은 95년 6억여원의 학교법인 예금중 4억여원만 남기고 2억여원은 이사장 개인명의로 관리하다 적발됐고, 충북 g학교법인은 기본재산으로 출연한 토지중 100여필지(공시지가 75억원)를 임의처분한 사실이 드러나 한 시민단체로부터 검찰에 고발됐다. 전남 h전문대도 재단이사장 등 재단과 대학관계자 5명이 서류를 조작해 공금 45억을 유용한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대전 모대학 오모(60)총장은 96년 학교공금인 32억원어치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빼내 금융기관에 담보로 맡긴 뒤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체의 운영자금을 대출받는 등 모두 159억원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4월 검찰에 구속됐다. 지방 S대와 K예술대 등 4개 대학과 3개 고교를 운영하고 있는 S대학 이모(59)총장도 지난해 등록금과 기성회비 등을 학교법인 회계로 전용, 90여억원을 횡령해 구속됐다.

 대학의 재단 관계자들이 학교예산을 횡령해 빌딩과 부동산 등을 구입, 자기 배를 불리는 동안 이 학교 교수와 학생들은 부속고등학교 건물을 빌려 연구실과 강의실로 사용해야했다(학교명 a∼h는 익명).

◎파벌싸움·금품 향응제공·유언비어 유포/총장선거는 “저질 정치판”

 대학총장 선거는 교수비리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파벌싸움, 금품과 향응제공, 유언비어 유포 등이 정치판 못지않다. 신성한 학문의 전당을 수호하고 대학발전의 비전을 제시할 책임자를 선발하는 과정이 「무한 권력투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국·공립대는 80년대 민주화과정의 전리품인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하고 있지만 선거과열로 지독한 홍역을 치르고 있고, 사립대는 재단과 교수들의 갈등으로 선출과정에 대한 합의조차 이뤄내지 못해 표류하고 있다.

 지방 C대학은 3월 신학기 학사행정의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총장선거에서 후보선출을 둘러싼 의과대학내 2개의 파벌싸움이 발단이 됐다. 다수파는 자신들이 내세운 A후보를 제치고 소수파의 B후보가 1위가 되자 교수들을 동원해 궐석중인 교수협의회의장을 자파교수로 선출, 총장선출과정의 문제를 트집잡아 낙선교수를 1위후보로 재선출했다. 이 과정에서 의대 교수들은 단체 휴진까지 했고, 양주를 돌리는 등 향응과 금품수수 소문까지 나돌았다. 대학측은 파문이 확산되자 교육부에 신임총장 추천을 유보한채 내분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2월 직선총장을 선출한 또 다른 C대학에서는 6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모교출신의 한 후보는 동문교수를 동원해 『내부 사정을 아는 모교출신만이 학교발전을 이룰 수 있다』며 세를 과시했고, 한 후보는 『동향사람들이 뭉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나섰다. 『양주박스가 돌아다녔다』『금품이 오갔다』『모후보는 성추행 전력이 있다』는 등의 얘기가 돈 것은 물론이다. 선거후엔 일부 교수와 학생들이 신임총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취임저지운동을 벌이는 바람에 또 한번의 홍역을 치러야 했다.

 확실한 오너(재단이사장 등)가 있어 「위계질서」가 뚜렷할 것 같은 사립대의 경우도 재단의 파벌간, 혹은 재단과 교수진 사이의 알력으로 극심한 홍역을 치르기는 마찬가지다.

 지방 모 사립대는 지난해 12월 교수 교직원 학생 등이 참석하는 총장추천위원회에서 선거를 하는 동안 재단선임에 반대하는 교수협의회가 별개의 선거판을 열어 다른 총장을 선발,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모 대학에서는 교수협의회와 총장선출위원회가 별도의 후보를 추천하고, 교직원노조와 총학생회가 총장선출 참여를 주장하고 나서 한바탕 회오리에 휩싸일 전망이다.

 선거과열과 파벌조장이 뒤섞인 혼탁 선거는 교수사회의 분열뿐만 아니라 학사행정의 부실화를 초래한다. 선거가 끝난 뒤 파벌간 갈등이 심화하는 것은 물론 선거운동에서의 논공행상을 둘러싼 보직흥정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대학교육협의회 이현청 고등교육연구소장은 『직선제는 파벌형성과 대학구성원간의 참여논쟁으로, 재단선임제는 대학구성원의 의사무시 등으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며 『제도개선에 앞서 총장후보자와 선거권을 가진 교수 교직원들의 사명감과 도덕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재단비리 대책/재단에 막강권한부여 잘못/예결산 공개원칙 명문화/교육부 감사기능 강화해야

 재단의 부정비리는 이사장의 전횡을 견제할 세력이 전혀 없다는데서 비롯된다. 학사행정에 대한 재단의 간섭을 줄이기 위해서는 권한에 맞는 법적·제도적 책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균관대 김선종 교수는 『대학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법인(재단)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현행 사립학교법 아래서는 부정비리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며 사립학교법 개정을 촉구했다.

 대학교육연구소 박거용 소장은 『예결산 공개원칙 명문화, 투명성 확보를 위한 외부감사제 도입 등이 제도화해야 한다』면서 『교수길들이기로 전락한 교수재임용제를 폐지하고 심의의결기구며 공식기구로서의 교수협의회를 설치할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의 감사기능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교육비리는 국가의 장래가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 일반 범죄보다 더욱 엄정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육부의 감사는 솜방망이에 불과했고, 때로는 재단에 면죄부를 주기위한 「생색용」이었다는 지적이다.

 법인과 총·학장의 역할에 대한 뚜렷한 관계설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설립자가 이사장인 법인은 대학발전의 주체로서 대학관리의 고유한 기능을 갖고, 대학운영과 실제 권한은 총·학장을 통해 표현되고 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성이 강한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재단책임자의 인식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학사비리의 근절은 힘들다는 게 공통된 견해다. 지난해 공채 총장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이사장의 전횡에 맞섰다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난 한 인사는 『학교를 법인에 종속시키면서 법인에 모든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제도도 바꿔야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법인이 건학이념을 유지하고 교육환경을 개선해 육영사업을 통한 사회적 존경을 보람으로 여기는 자세』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사회부=이충재·최윤필·박일근·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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