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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식 회복하자/이나미 신경정신과 전문의(전문가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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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식 회복하자/이나미 신경정신과 전문의(전문가진단)

입력
1998.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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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탈선·폭력 올바른 사랑 못받은 탓/이웃 소외된 아이들도 함께 보듬는 사회돼야” 지난 17일 우리는 거의 비슷한 또래지만 완전히 다른 두 길을 택한 청소년들을 만났다. 한 사람은 단순히 자기가 힘이 세다는 것을 또래 아이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죄없는 어린이를 때려죽였고 또 한 사람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 준 슬픔을 딛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어 실의에 잠긴 국민들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청소년들은 다른 어떤 연령층보다도 감수성이 강하고 예민한 심리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지금처럼 사회가 우울하고 병들어 있을 때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더욱 정확히 반응한다. 그러나 어떤 청소년은 어떤 환경에서도 그 아픔을 딛고 훌륭하게 일어설 수 있는데 반해 다른 어떤 청소년은 타락과 폭력의 나락에 빠져 버린다. 그 차이는 무엇보다 올바른 사랑을 제대로 받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우선 살인을 저지른 두 아이의 생명경시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완벽한 무감각을 보자. 청소년 시기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빠져 남에게 무심한 경향이 있지만 이들 두 청소년은 아주 극단적으로 자기만을 생각했다. 맞아 죽는 아이의 괴로움을 이들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타인의 감정을 나누는 능력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덕성이지만 교육없이는 습득할 수가 없다. 이들중 하나는 퇴학당해 중3때 가출한후 5건의 범죄를 저질렀고 또 한명은 부모가 이혼했다는데 이런 환경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공감능력이나 양심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학교와 부모가 나를 포기했으니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마구 살면서 마치 복수나 하듯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분노와 불만을 해소하려 했을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가 이들을 포기하고 내쫓은 후 그들이 만나는 대상이 무엇인가. 폭력과 선정적인 장면들만 난무하는 비디오나 컴퓨터 게임같은 비교육적인 매체 아니면 자기와 비슷한 문제아집단의 파괴적인 준거틀이 그들이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신념체계일 뿐이다. 특히 폭력장면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에는 폭력에 대한 무감각상태가 형성되고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그런 장면들을 모방하게 된다. 또 한번 폭력을 휘두르게 되면 가속도가 붙어 일시적으로 자기 통제를 잃는 자아상실의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이들에게는 「잔인하면서도 죄의식없는」 모습이 마치 「남자답고 힘있는」 모습으로 잘못 투영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그나마 관심을 표현해주는 나쁜 또래 집단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가 될 수도 있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어른들처럼 이들도 힘을 과시해보겠다는 이유 때문에 죄없는 한 생명을 영원히 우리에게서 빼앗아갔다. 이들의 도덕적 무감각과 통제력 상실은 바로 우리 사회가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하는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검찰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껴안자는 의미에서 두팔두팔(2828)이라는 전화를 개설해 학교폭력을 추방하자는 캠페인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더욱 시급한 것은 나와 내 가족 뿐아니라 주위의 소외된 아이들도 우리 모두 의무와 사랑으로 돌보고 가르쳐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아닐까. 「엄마, 사랑해요」라고 외치며 쇼트트랙의 그 힘든 훈련을 이겨낸 김동성군이 귀하듯 훌륭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죄로 외롭게 방치되는 이웃의 불행한 자녀들도 실은 우리 모두의 귀한 아이들이다. 예쁘고 사랑스런 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부모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인해 탈선한 이웃의 자녀도 같이 품에 안자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고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획일적인 학교에 적응못한 중퇴자들이 소속감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그들을 위한 교육기관도 하루빨리 설립되어 훌륭한 성인으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 지금처럼 처벌 위주의 보호처분보다는 지속적인 상담과 직업훈련 등으로 희망을 지니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꼼꼼하게 가르쳐야 한다.

 명목뿐인 보호관찰보다는 열의를 지닌 전문가집단이 그들의 부모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자. 자녀에 대한 희생보다는 내 행복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부부들이 버리는 불쌍한 아이들과 부모의 갑작스러운 사망 등으로 하루 아침에 결손가정의 자녀가 된 경우를 사회가 대신 보듬고 돌볼 수 있는 제도가 하루빨리 확충되어야 한다. 부모가 안 계시면 삼촌이나 이모 또는 조부모가 맡아 키우고 그도저도 불가능할때는 이웃에서 돌보는 식의 따뜻했던 옛 인심을 이젠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각박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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