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동경) 거리를 걷다가 중학생들을 만나면 슬며시 피하게 된다. 중학생들의 어처구니 없는 범죄가 잇따르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버릇이다. 일본의 「안전 신화」가 10대, 그것도 중학생들에 의해 무너져 가는 듯한 나날이다. 수업에 늦게 들어왔다고 꾸짖는 여교사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하고 3,000엔(약 4만원)을 돌려 주지 않는다고 69세의 노인을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을 대하면서 일본의 기성세대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범죄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은 이른바 「비행 청소년」이 아닌 평범한 아이들의 짓이란 점에서 충격이 더하다.
범행 중학생들은 한결같이 경찰 조사에서 「기레루」 상태에서 일을 저질렀다고 얘기했다. 원래 「끊어지다」「떨어지다」란 뜻의 말이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정신이 나가다」「이성을 잃다」는 뜻의 속어로 쓰인다. 한국 술꾼들이 흔히 「필름이 끊기다」는 말을 쓰는 것과 닮았다.
왜 아이들이 작은 일에도 참지 못하고 화가 나서 「정신이 나가는」 것일까.
한 전문가의 지적은 새겨 들을 만하지만 원인이라기 보다는 현상을 진단하는데 그치고 있다. 『아이들이 외롭고 우울하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같이 모여 놀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따로 논다. 어떤 아이는 컴퓨터게임을 하고 어떤 아이는 비디오로 만화영화를 보고 어떤 아이는 워크맨을 듣는다. 그저 모여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자제력을 잃어가고 있는 뚜렷한 현상이 사회 변화에 따른 시대의 질병, 문화의 질병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대개 이런 결론이 내려지면 책임문제나 개선 방안은 흐려져 버린다.
일본 중앙교육심의회가 내놓은 중간보고서의 내용은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보고서는 교육관계자들이 책임회피라는 오해를 부를까 봐 좀체로 입에 담지 않았던 「가정의 책임」을 한가운데에 놓았다. 『인격형성에 무엇보다 중요한 「가정 교육」이 사라져 가고 있고 아이들의 잘못을 꾸짖지 않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가정에 중심이 없어 아이들이 가치판단에 혼란을 겪는다』 얼핏 이런 지적은 가부장제에 대한 향수를 담은 듯하다. 그러나 「말조심」이 몸에 밴 일본의 전문가들이 지난해 중학생에 의한 고베(신호)연쇄살인 사건 이후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내놓은 결론이다.
가정에서 부부가 협력해 중심적인 가치를 만들어 가고, 이를 아이들에게 전하는 일. 혹시라도 지금 우리는 「아이를 자유롭게, 개성적으로 키운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이런 최소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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