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동계곡 맑은물과 기암괴석을 구경하며 힘겹게 향적봉에 오르면 탁트인 하늘 시원한 가슴19일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 이때쯤 덕유산을 찾으면 겨울의 한 자락이 드리워진 장중한 산세와 봄기운이 기지개를 켜는 무주 구천동계곡의 절경이 빚어내는 계절의 섬세한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백두대간의 줄기 소백산맥은 서남쪽으로 뻗어 소백산과 속리산을 떨군 다음 지리산으로 내달리다 덕유산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주봉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적상산 두문산 거칠봉 칠봉 무룡봉삿갓봉으로 이어지는 해발 1,300m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덕유산(1,507m)까지 무려 30㎞나 이어진다. 향적봉에서 남덕유산에 이르는 주능선은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룬다.
향적봉 정상에서 발원한 시내는 굽이굽이 돌아 깊은 계곡을 적시며 무주 33경을 빚어내고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흘러든다. 물줄기를 따라 무주군 설천면까지 이어지는 장장 70리의 계곡을 구천동이라 한다. 덕유산의 진면목을 살피려면 설천면 삼공리 덕유산관광단지에서 구천동 계곡을 지나 백련사를 거쳐 향적봉으로 오르는 산길이 좋다.
덕유산 관광단지에서 백련사까지는 6㎞. 쉬엄쉬엄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다. 매표소를 지나 계곡길로 접어들면 청아한 물소리가 먼저 귀에 들어온다. 손을 담그면 등줄기가 서늘해질 정도로 차디차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아지고 잡념이 사라진다. 복잡한 세상일도 저만치 물러간다. 「무주군지」에는 조선 인조때 연이은 호란과 당쟁으로 사회불안이 계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구천동으로 숨어들어와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자연에 기대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나 보다. 티없이 맑은 계곡물은 기암괴석에 부딪치고 암반에 미끄러져 소와 담을 만들고 폭포로 떨어진다. 깊은 산에서나 맛볼 수 있는 청정한 기운, 골짜기를 감싸는 그윽한 바람소리. 비탈진 산자락에 우뚝 선 겨울나무들. 동행한 무주군청 문화관광과 이광영(33)씨가 말을 건넨다. 『말주변이 없어 표현을 잘 못하겠지만, 참 좋지요?』 어눌한 그의 말이 오히려 그 순간의 느낌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해발 900m 덕유산 중턱에 자리잡은 백련사. 기록에 따르면 구천동 계곡에 1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유일하게 백련사만 남았다.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숨어 살던 곳에 하얀 연꽃이 피어 절을 짓고 백련암이라고 이름붙였다. 대웅전 뒤 바위에서 솟아 오르는 맑은 약수에 목을 축이고 다시 발걸음을 서두른다. 이제 길은 영 딴판이다. 백련사 뒷길에서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2.5㎞ 거리의 산길은 가파르게 이어져 무척 숨가쁘다. 힘에 겨워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다. 정상을 앞둔 100m지점부터는 더욱 험해져 45도 경사의 비탈길이다. 앞으로 잔뜩 몸을 웅크리고 두 손 두 발로 오르다보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숨이 곧 넘어갈 듯 목에 차오를 때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 주변에는 천년을 넘게 산다는 주목과 구상나무 군락지가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져 있다. 주목군락지에 핀 설화는 덕유산의 겨울비경 중 하나. 멀리 동쪽으로 가야산, 서쪽으로 내장산과 운장산, 남쪽으로는 지리산 능선, 북쪽으로는 계룡산과 속리산이 아스라히 보인다. 막힘없이 탁 트인 하늘과 맑은 공기, 무주 33경의 마지막 비경이다.
산행이 힘에 부치는 사람은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1,520m)까지 운행하는 관광곤돌라(왕복 1만원)를 이용하면 된다. 가는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서울무주(7,200원), 서울구천동(9,600원)행 고속버스가 있다. 3시간 소요. 숙박시설은 덕유산관광단지의 여관(1박 2만∼2만5,000원)이나 무주리조트가 있다. 무주리조트(06573206880∼4)의 가족호텔은 취사도 가능하다(4인가족 기준 19평형 1박 6만6,000원).<무주=김미경 기자>무주=김미경>
◎‘산악인의 집’ 주인 허의준씨/15년째 산행돕는 ‘허대장’/덕유산 4계 사진찍기 열중
덕유산 정상 향적봉 아래 자리잡은 「산악인의 집」주인 허의준(68)씨. 사람들은 그를 「허대장」이라고 부른다. 많은 조난자들이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으니 그런 호칭도 당연할 것같다.
83년 산에 들어와 올해로 15년째. 구름의 모양만 봐도 바람만 달라져도 비가 올지 눈이 내릴지 훤히 꿰뚫는다. 일과는 덕유산의 하루를 카메라에 담는 일로 시작된다. 입산 2년 뒤 일제 중고카메라 한 대를 구입,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93년 국립공원관리공단 주최 「제1회 국립공원 사진공모전」에서 덕유산 정상 진달래꽃에 핀 설화사진으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공무원을 그만두고 석유장사를 한 20년 했는데 오십줄 넘어서니 일년 정도 쉬고 싶더라구요. 지리산에 들렀다가 덕유산에 산장을 짓는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렇게 덕유산에 눌러 앉았다. 서울에서도 틈만나면 산을 벗삼아 지냈다. 『지리산은 250번 올랐나… 설악산은 말할 것도 없지요』
산과 함께 하며 터득한 깨달음은 「무리하지 않는 단순한 삶」. 『큰 욕심 없어요. 해놓은 것도, 남길 것도 없지만 사진은 좀 찍었으니까 사진집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이집 음식 괜찮아요/무공해 산나물정식 별미/빠가사리 어죽은 얼큰·시원
무주의 별미는 뭐니뭐니 해도 물맑고 골깊은 구천동계곡에서 자란 무공해 산나물로 만든 산채정식이다. 덕유산국립공원 관광단지 내에는 소문난 집이 많다. 한국회관(06573223162)의 산채정식은 고사리 곰취 더덕을 비롯한 싱그런 산채에 도토리묵 생선구이 버섯전등 맛깔스런 찬과 구수한 된장찌개까지 곁들여져 푸짐하다. 표고국밥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 국물은 육개장처럼 얼큰하고 고기 대신 표고버섯을 넣어 향기도 그윽하다. 산채정식 1만원, 표고국밥 5,000원, 표고덮밥 8,000원. 전주식당(06573223125)도 맛이 깔끔하다. 산채정식 1만원, 비빔밥 5,000원, 표고국밥 5,000원.
무주는 금강 상류지역이라 어죽 매운탕 추어탕 등의 별미도 입맛을 유혹한다. 무주읍 중앙상가 건너편의 금강식당(06573220979)은 어죽이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금강식당의 어죽은 인근 냇가에서 잘 잡히는 자가사리(일명 빠가사리)를 넣고 끓이는데 비린내도 나지 않고 고추장을 풀어 맛이 얼큰하고 시원하다. 듬성듬성 떠 있는 수제비 맛도 그만이다. 어죽 4,000원, 쏘가리탕은 양에 따라 3만∼5만원, 메기탕은 2만∼3만원 한다.<김미경 기자>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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