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에 가면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아주 재미있는 시인이 한 사람 나왔다. 시라는 것을 무슨 영탄이거나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난해한 기호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김영남(41) 시인은 시의 다른 맛을 보여준다. 그것은 유쾌하고도 지적인 게임같은 것이다.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그 마을에 가면/…/해안선을 잡아 넣고 끓이는 라면집과/파도를 의자에 앉혀 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정동진역」 부분).
김씨는 TV드라마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 정동진역을 이렇게 묘사한 시로 지난 해 등단했다. 「해안선을 잡아 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 놓고」 마시는 소주집같은 유쾌한 연상은 독자를 즐겁게 한다.
그의 첫 시집 「정동진역」(민음사 발행)에는 특히 서술식 제목들이 많다. 「누워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올라타고 싶다」 「요즈음 가슴들에는 가짜가 많다」는 식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나서는 끝머리에 가서 병든 세상을 풍자한다. 「나는 누워 잠자는 걸 보면 꼭 한번 올라타 보고 싶다. 누워 있는 상사, 누워 있는 행정, 누워 있는 학문…」. 김씨가 펼치는 개성적인 역설의 재미와 유머감각은 누워 있는 시들을 깨워 일으킨다. 그의 시가 단순한 말재주를 넘어서는 것은 오랜 습작을 통해 다져진 역량 덕분일 것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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