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적 가벼움’은 가라/40대 두 여성작가 첫 장편소설 눈길/윤애순 ‘예언의 도시’캄보디아 이국정취 배경 생의 비극성 통찰 돋보여/정석 ‘카프카의 결혼’결혼불능증 남자통해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 『80년대의 금욕적인 투사형 주인공과 전혀 다른, 쾌락적인 예술가형 주인공이 우리 문학, 특히 소설에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기에 이르렀다. 이들 댄디형 주인공은 너무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작가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지경이다』. 문학평론가 남진우씨는 계간 「세계의 문학」 봄호에 실린 「견딜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에서 90년대 한국소설의 특징을 댄디즘으로 규정하면서 이같이 말하고 있다.
세상이 10년단위의 연대로 특징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리긴 했지만, 윤애순(42) 정석(49) 두 작가의 작품은 우선 이런 90년대적 댄디즘을 가볍게 넘어선 새로운 우리 소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갑다. 윤씨의 「예언의 도시」(문학동네 발행)는 제3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며 정씨의 「카프카의 결혼」(민음사 발행)은 지난해 「오늘의 작가상」최종심에 올랐던 작품이다. 쟁쟁한 문학상을 통해 나온 소설이라는 점과 함께 40대 여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예언의 도시」는 국내 최초로 킬링 필드의 나라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그 곳에서 1년여를 살았다. 『대포 소리가 들리고 총성이 나면 그냥 「전쟁이 났구나」하고 생각하는 혼돈의 나라』였다. 「까마귀떼의 저주가 캄보디아의 하늘을 덮으리라. 하늘과 땅이 바뀌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피를 흘린다. 피가 코끼리의 배를 적시도록 흐른 후에야 서쪽으로부터 구원이 올 것이나…」하는 묵시적 문장으로 문을 연 소설은 시종 독자를 끌어들이는 글솜씨와 줄거리의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사랑에 실패한 혁명가 「타」와 그의 옛사랑의 여인 「아니」의 사이에서 태어난 벙어리딸 「스라이」, 불우한 어린 시절과 사랑의 실패를 겪고 한국을 떠나 캄보디아로 도피한 남상훈과 외교관의 아내로 낯선 이국땅에서 방황하는 숙영. 이들의 사랑과 야망이 벌겋게 달구어진 메콩강의 강물과 끈적한 밀림에서 뒤엉키며 음모와 배신, 관능의 이야기를 엮어간다. 이국취미를 자극하는 풍물 묘사, 생생한 정보와 함께 생의 비극성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카프카의 결혼」의 작가 정씨는 현재 강원대 독문과 교수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카프카 전문가이다. 「나는 머리로 먹고 마셨으며 산책을 할 때도 머리로 걸었던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주인공 이동석. 그가 자신의 지성의 무게를 가늠해보기 위해 체중계에 머리 무게를 달아보는 재미있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카프카 연구자인 그는 자신이 카프카처럼 「결혼불능증」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남자다. 작가는 동석이 그 희한한 병에 걸리게 된 삶의 과정에 대한 서술을 날줄로, 실제 카프카의 작품들인 「소송」 「변신」 「심판」 「성」에 대한 분석과 그것이 동석의 삶에 개입하게 된 계기들을 씨줄로 소설을 엮고 있다. 감칠맛 나는 문장과 함께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작가의 서술은 소위 지식인들에 대한 유쾌하고도 씁쓸한 비판으로 읽힌다.<하종오 기자>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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