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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촌 사람들 이렇게 산다(유라시아 장수촌을 찾아서:2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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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촌 사람들 이렇게 산다(유라시아 장수촌을 찾아서:23·끝)

입력
1998.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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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조화하며 낙천적 생활/대부분 병원도 없는 오지 위치/건강관리에 특별한 관심 없어/감정표현 솔직하고 인정 넘쳐/늙어도 일 계속·발효식 잘먹어1.장수촌은 낙원이 아니다

 84년부터 96년까지 13년동안 세계보건기구(WHO)의 자문관으로 유라시아대륙의 여러 고장을 돌아다녔다. 카스피해에 인접한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투루판과 우루무치, 티베트의 라사와 시가체, 칭하이(청해)성의 시닝(서녕), 윈난(운남)성의 쿤밍(곤명), 시쑤앙반나, 몽골과 네이멍구(내몽고), 하노이와 호치민시 등 여러 고장의 전통 의학현장을 살펴보았다.

 이 고장들은 이른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촌이다. 그러나 낙원도 아니고 도원경도 아니다. 한때 유럽을 뿌리째 흔들었던 흑사병의 진원지인 고비사막, 티베트와 칭하이성을 잇는 해발 3,000m의 칭장 고원 등과 같이 험난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들에선 어린이들이 설사나 전염병으로 많이 죽는다. 평균수명도 높지 않다. 위생상태도 나쁘다. 목욕은 거의 하지 않는다. 전기나 수도도 없다. 땔감으로는 말, 야크, 양같은 가축의 배설물을 이용하고 있다.

 문맹률도 높아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출생신고가 정확하지 않아 확실한 나이를 파악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에도 장수촌은 있다. 신장(신강)자치구의 위구르족은 장수하기로 소문나 있다. 100세가 넘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장수가 첨단 의료시설이나 좋은 약 때문에 얻어진 결과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이런 장수촌에는 포장도로가 없다. 자동차로 이동하려면 비가 오지 않는 날을 택해 사륜구동의 지프차같은 것을 이용해야 한다. 현대식 병원이 있을리 없다. 약도 마을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생약이 고작이다.

 물론 티베트에는 정력에 도움을 주고 건강하게 사는데 좋다는 칠십미진미환이나 이십오미산호환같은 것이 있다. 몽골이나 사마르칸트에도 나름대로 몸에 좋다는 보약들이 많다. 또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채취한 야생 동충하초는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도회지에 살지 않는다. 모두 교통편도 나쁘고 문화시설이 없는 오지에서 살고 있다.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높아져 도시로 나온 사람들은 옷을 잘 입고 좋은 음식을 먹지만 오래 살지 못한다. 따라서 중국의 한족중에 장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의 훈자도 소문난 장수촌이었으나 도로가 건설되고 전기가 공급되면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장수촌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듯 인적이 닿지 않는 오지에 위치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잘 웃고 화도 잘낸다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생활수준이 낮은 오지에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의료외적인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첫째 특징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장수촌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0여년전 미국에서 출판돼 100만부 넘게 팔린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책은 「문명사회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지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장수촌에선 나이 들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 것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무리하게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이어트도 하지 않는다. 뚱뚱하면 뚱뚱한대로 살고, 마르면 마른대로 살아간다. 현대인은 비만증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날씬해지려고 무리하게 살을 빼는 사람들이 많지만 장수촌에선 다이어트가 없다.

 너무 조바심을 갖고 건강을 관리하면 오래 살지 못한다. 때가 되면 죽는다는 각오를 해야 장수할 수 있다. 이런 인생관은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특색이다. 또 장수촌사람들은 독실한 종교인이다. 우즈벡족, 카자흐족, 위구르족은 회교신도이고 몽골족과 티베트족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다.

 회교신자는 율법에 따라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따라 기도를 올리고 1년중 한 달은 금식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티베트나 몽골의 불교신자들은 일생에 한 번쯤 오체투지하면서 불공을 드린다. 현세는 내세를 위한 찰나 요 영생에 이르는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실제 티베트에 가면 병들고 늙어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쉽게 본다. 죽음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야말로 장수의 발판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는 화를 잘 내고 잘 웃는 솔직한 생활을 한다는 점이다. 몽골, 티베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사람들은 유목민인 동시에 말을 잘 타는 기마민족이다. 여름이면 여러 부족들이 시냇물이 흐르는 초원에 모여 큰 잔치를 연다. 나담축제이다.

 말타는 경기를 하고 활도 쏘며 씨름과 레슬링을 합쳐 놓은 것과 같은 격투기도 벌인다. 또 폴로경기와 비슷한 게임도 한다. 두 팀이 말을 탄채 죽은 양을 막대기로 쳐 골대에 넣는 시합이다. 선수들은 특별한 보호구를 입지 않는다. 경기규칙이 엄격하지 않아 과격해지면 상대방선수를 막대기로 치기도 한다. 소리를 지르며 화도 잘낸다.

 그러나 이 곳 사람들은 반가운 손님이 오면 자신들의 천막에서 며칠씩 묵고 갈 것을 간청한다. 그만큼 인정이 넘친다. 옛날에는 나그네의 객고를 풀어주기 위해 아내까지 양보했다는 얘기도 있다.

 술을 마시는 풍습도 중국의 한족과 전혀 다르다. 술잔을 돌려가며 마신다. 손님이 취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는다. 옛날 우리나라 풍습과 비슷했다. 여자로 하여금 권주가를 부르게 해 주흥을 돋우는 경우가 많다. 기분 좋으면 어린이처럼 잘 웃고, 마음에 안 들면 화를 내고 욕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한다. 한족모임에선 그런 일이 없다.

3.약을 거의 먹지 않는다

 장수촌에 가려면 여름에 가야 한다. 겨울엔 춥고 교통편도 나빠 가기 힘들다. 실제로 여름 한철은 살만하다. 들에는 풀이 돋아나고 기르는 말, 양, 야크가 살찌며 과일과 채소도 풍성하다. 밤에는 춥지만 낮에는 덥다.

 여름이면 자연히 일손이 달리게 된다. 120세 노인들도 젊은이와 똑같이 말을 타고 양이나 야크떼를 몰고 다닌다. 이 곳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일한다.

 그것이 곧 노화를 지연시키고 건강에 활력을 불어넣는 유산소운동이다. 현대인은 운동부족으로 늙는다. 밭이나 논에 나가 일하던 시절에는 운동부족이란 없었다. 도시의 샐러리맨은 격렬한 경쟁사회에서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운동도 모자라고 육체적인 노동도 하지 않는다.

 체육생리학자들이 권하듯 사람은 매일 육체적 활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정신적 긴장은 육체적 운동으로 해소할 수 있다. 중년 이후에는 땀이 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20∼30분간 속보를 하거나 조깅, 새벽등산을 해야 한다.

 노이로제, 신경과민, 불면증,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염, 원형탈모증, 고혈압, 관상동맥혈전증, 당뇨병은 정신 내지 정서적 불안정 때문에 생겨나는 심인병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병 때문에 육체가 병든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심인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수촌에는 게으른 사람이 없다. 나이를 먹어서도 열심히 일하고 육체적 활동을 계속할 때 건강은 유지된다.

 또 장수촌의 음식은 균형식이 아니라는 것도 특징이다. 영양학자가 권장하는 균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또 고기를 많이 먹는다. 말젖이나 양젖을 요구르트로 만들어 먹는다. 생선은 젓갈로 담아먹고, 고기도 발효시켜 먹는다. 우리나라의 된장과 같은 발효식품도 잘 먹는다.

 그러나 약은 거의 없다. 좋은 약을 먹을 수 있는 도회지 사람들은 같은 종족이라도 장수하지 못한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그들은 약을 적게 먹기 때문에 장수한다. 약은 꼭 필요할 때 먹고 아무 약이나 먹지 않는 것이 장수하는데 도움이 된다.<허정 박사>

□약력

▲57년 서울대 의대 졸업

▲60년 미 미네소타주립대 보건학 석사

▲63년 서울대 보건학 박사

▲78년 서울대 보건대학 원장

▲79년 한국노년학 회장

▲81년 대한예방의학 회장

▲88년 한국보건행정학 회장

▲현 재 서울대보건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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