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 기치불구 실제론 자영업자 보험료 근로자에 전가시키는꼴” 2월6일의 노사정 대타결은 노사간의 여러가지 대립되는 이해들을 노·사 대표들이 모여 대타협을 이루어 냈다는데서 높은 평가를 받아도 좋을 듯하다. 그런데 노사 타협으로 발표된 내용 가운데 노동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그리고 오늘의 경제위기 타개와도 상치되는 의료보험통합이 내용으로 들어 있어 혼란스럽다.
의료보험통합 논쟁은 80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통합주장자들은 현 제도가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가난한 지역주민은 지역주민끼리 따로 관리하여 경제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통합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자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런 주장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나 우리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면 의료보험통합이 오히려 이러한 이념과 상치되는 허구적 주장임을 알게된다.
의료보험통합을 통해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지역주민들의 소득이 정확하게 파악되어 근로자의 소득이 지역주민보다 높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보험료가 형평되게 부과되어야만 한다. 의료보험의 형평성문제는 조합방식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영자들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지역주민에게 합리적 보험료 부과가 어려운데 문제가 있다.
통계청이 발간하는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근로자들보다 높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연 1회 자진신고로 노출되기 때문에 도시지역주민의 경우 25% 정도, 그리고 농어촌주민의 57%만 소득 관련자료가 있으며, 또한 신고소득이 실소득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근로자들의 근로소득은 노출이 쉬워 보험료를 제대로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조합은 재정이 안정되는데 비해 지역주민은 소득 노출구조의 문제로 인해 재정이 불안정한 것을 놓고 직장조합은 부자조합이니 지역조합과 통합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은 결국 근로자들에게 자영업자들의 보험료 부담을 전가시키자는 것으로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한 발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의료보험통합의 다른 문제는 근로자의 부담가중은 바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높이고 생산비를 증가시켜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까지 약화시킨다. 따라서 통합은 근로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그리고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인데 왜 노사 타협의 산물로 나타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부에서는 오늘날의 경제위기로 근로자들이 정리해고되어 지역의료보험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통합과 같은 장치가 유효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것은 통합과는 무관한 주장이다.
만약 우리의 의료보험이 통합되어 있다면 정리해고된 근로자도 국민의료보험공단의 피보험자로 매달 보험료를 내야만 한다. 그런데 현 제도에서는 해고된 근로자에 대해서는 직장조합에서 이들을 위한 특별대책을 마련하도록 되어 있다. 즉 통합체계에서 자격의 변동이 없을 경우에는 특별대책이 어려우나 현행제도에서는 자격의 변동이 파악되어 오히려 특별대책이 가능하고 의료보험의 진료비 지불준비금 적립금은 바로 이러한 용도로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의료보험 통합이 처음 제기된 80년대 초반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몇개 국가들이 의료보험조합을 통합하고 일반재정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러다 80년대 후반 동구권의 몰락이후 일반재정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통합추세는 사라지고 오히려 보험조합간의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찾는 추세로 바뀌고 있으며 국가가 국민들의 의료를 직접 관리하던 구 공산권 국가들도 보험조합을 설립하여 대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보험 통합이 처음 제기된 80년대 초반과 현재는 경제 사회구조 뿐만아니라 국제경제 환경도 엄청나게 변화하였다. 우리의 경쟁대상인 선진국들은 의료보험에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효율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
새 정부는 경제정책의 화두로 시장경쟁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의료보험통합은 근로자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새 정부가 구상하는 많은 복지정책의 추진을 제약하고 새 정부의 경제정책의 원리에서도 벗어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문민정부가 개혁의 대명사로 내세운 금융실명제가 실패한 근본원인의 하나는 우리의 상거래가 현금중심의 거래라는 현실을 잊고 경제정의 구현이라는 이상에만 매달려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를 택한데 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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