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IMF구제금융의 고난은 어떻게든 극복될 것이다.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지난 날처럼 우리 경제의 활력이 되살아날 것인가. 그래서 살기좋은 일류 선진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 나라를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대개혁에 성공하지 않는한 21세기의 이 나라는 성장은 주저앉고 물가는 비싸고 살기는 어려운 「저성장 고물가 저생활」의 이류국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
지금 우리나라가 주저앉은 근본원인이 산업경쟁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요인에 있다고들 믿고 있다. 임금은 비싸지고 생산성은 낮고, 그래서 고비용 저효율이 되어 우리 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됐고, 그래서 기업은 쓰러지고 국제수지는 적자가 되어 외환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그러니까 허리띠를 졸라매고 거품을 빼자는 것이다. 그래서 IMF처방이 나왔다. 고금리체제를 유지하면서 도산과 실업, 그리고 인플레의 고통을 감내하고 노동시장과 금융시장, 그리고 재벌경영구조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대안이 없는 올바른 처방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개혁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금 현재의 국가적 위기를 불러온 더 큰 요인을 덮어두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생활위기이다. 생활위기라 함은 아무리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늘어도 국민생활이 더 이상 향상될 수 없는 벽에 부딪쳤기 때문에 생기는 국가위기이다.
그러면 생활위기는 왜 생기는 것인가. 이것은 사회구조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국민생활은 먹을 것과 입는 것이 문제였으며 이것들은 경제만 성장하면 따라서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을 지향하는 지금의 사정은 다르다. 이제 국민생활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교육문제 교통문제 환경문제 공간문제 의료문제와 같은 이른바 사회 공공재인데 이것들은 이제 경제가 성장할수록 오히려 뒷걸음질 하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뿐인가. 이제 우리의 불합리한 생활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삶의 질을 선진화할 수 없는 벼랑에 서있다. 예컨대 자녀를 시집장가 보내는데 수천만원을 써야 하고, 돈봉투를 마련해서 하루일을 팽개치고 결혼식장을 찾아 다녀야 하고, 한달 수십만원의 과외비를 부담해야 하고, 세계에서 세번째의 귀금속 수입국이 돼야 하는, 이러한 생활관행을 시정하지 않는한 삶의 질을 선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초등학교에서 실습을 위해 판자 한조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보자. 선진국에서는 학교에서 일괄해서 실습자재를 마련해 실습을 시키고 다시 두었다가 다음해에도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하는가. 학생 개인이 마련하도록 하는데 이로 인한 가정의 야단법석, 그리고 사회적인 정신적 물질적 비용이 얼마나 큰가. 매우 작은 일 같지만 이런 것이 바로 한국사회와 선진사회의 구조적 차이이며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낮은 생활 밖에는 누릴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생활위기는 우리의 의식구조와 직결돼 있다. 나만 살고 내 가족만 잘살면 된다는 배타성, 혈연 학연 지연 중심의 집단이기성, 외부인에게 친화적이지 못한 폐쇄성, 자녀들을 훌륭한 시민으로 교육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시키려는 출세교육관, 이러한 후진적 의식구조가 생활위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투자를 위한 공교육비 부담은 기피하면서 사교육비로 훌륭한 자녀교육을 할 수 있다는 생각, 환경보호 투자는 소홀히 하면서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를 달아서 맑은물 맑은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개인은 부유하면서 사회는 가난한 사회구조, 이런 것을 시정하지 않고는 위기는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를 개조하는 전면개혁이다. 경쟁력 회복을 위한 경제개혁, 교육 환경 의료 공간문제등에 대한 사회개혁, 국민생활 합리화를 위한 생활개혁, 정치선진화를 위한 정치개혁, 그리고 국민의식개혁등 5대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것을 새로운 건국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새 정부는 임기를 의식하지 말고 인기를 생각하지 말고 이 역사적 과업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 주길 바란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새정부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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