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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의료계도 외환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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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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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등하는 의약품수입가/거기에 공급마저 달려/수술미루고 치료중단…/국민건강 빨간불 켜졌다의료계가 「IMF 몸살」로 몸져 누웠다. 일부 의약품과 진료재료의 공급부족과 가격상승으로 병원측이 치료를 중단하거나 제때 치료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하면서 「의료대란」을 예고하고 있다. 병원들이 의약품의 사용량을 줄이거나 값싼 제품으로 대체하면서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 병상수만도 800개가 넘는 국내 유수의 한 대학병원의 경우를 보자. 진단시약, 1회용 주사기, 거즈 등 필수적인 의료소모품 대부분이 재고가 거의 바닥나 비상이 걸린 상태다. 혈액제재인 알부민, 곰팡이균으로 인한 환자의 2차 감염을 막는 암포테리신­B, 이식용장기저장용액 등 몇가지 필수약품은 이미 동이나 버렸다. 약제부 직원들이 인근 약국을 돌며 한두개씩 사다 쓰거나 긴급 환자의 경우 직접 사오게 하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 병원 약제부 과장의 말. 『일부 제약회사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인상을 요구한다. 그것도 즉시 현금결제를 해주지 않으면 약을 못주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애를 먹고 있다. 아예 약이 떨어졌다고 잡아떼기도 한다. 이대로가면 2월말쯤에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중소 병·의원들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약품 공급순위에서 뒷자리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특히 적자품목이 많은 소아과와 의료 소모품을 많이 쓰는 외과 등이 심하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F소아과 최모(38) 원장은 『소아 예방접종은 시기가 정해져 있어 때를 놓치면 안된다. 그런데 대부분이 적자품목인데다 시장규모도 크지 않아 제약회사들이 예방백신 쪽은 신경을 덜 쓰는 것 같다. 돈 때문에 아이들의 미래를 망쳐도 되는 것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제약업계도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수입원가가 폭등하고 병원 경영난으로 인해 자금회전이 안돼 이중고를 겪고 있다. 수입이 아예 막혀버린 품목도 상당수다. 1일자로 보건복지부에서 환율연동제를 확대 적용, 상당수 약품과 진료재료의 값을 올려줬지만 환율 인상분에는 못 미친다고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불만이다. 상당수 품목은 적정 마진을 밑돌거나, 아예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진단시약을 수입, 공급하는 G제약 관계자는 『수입단가가 2배 가까이 뛰면서 지난 한달동안만 5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그나마 수입선도 전액 즉시 현금결제를 요구하는 바람에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약을 갖고 있으면서도 안 주는 게 아니라 못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의약품 가격인상 외에 더 이상의 인상 조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가격인상 및 보험료 조기지불제 도입으로 의약품 수급난이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일부 의약품은 당분간 어려움이 있겠지만 의료대란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당국의 전망과는 달리 일선 병원들은 여전히 의약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제약업체들의 출하기피, 병원의 의약품 사재기 등이 기승을 부리면서 일부 중소 병·의원은 진료중단과 폐업위기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문제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서비스의 특성상 시장원리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제때에 적절한 약품과 수량이 공급되지 않으면 크나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는 의료 서비스의 특수성이 고려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원과 제약업계, 보건복지부 등 각 의료주체들이 각자의 논리와 이익만을 고집하는 가운데, 의료서비스 시스템의 동맥경화 현상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의료계가 몸져 누워 있으니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황동일 기자>

2일 하오 서울의 A종합병원. 이틀전 신장결석제거 수술을 받은 최모(39)씨는 이날 아침에 맞은 링거액 주사를 다시 맞았다. 병원에서 최근 링거액 주사바늘을 플라스틱(젤코)대신 쇠바늘로 교체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플라스틱 바늘은 핏줄을 따라 움직이므로 통증이 적지만, 쇠바늘을 쓰면 때로 혈관이 터져 주사부위가 부어오르기 때문이다. 병원측에 항의를 했지만 소모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그러니 양해해 달라는 대답이었다.

오는 25일 B종합병원에서 팔목 흉터를 제거하는 피부이식 수술을 받기로 한 김모(27)씨. 최근 병원측으로부터 수술을 연기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의약품 수급난으로 긴급하지 않은 수술은 미루고 있다는 병원측의 얘기였다. 6개월을 기다려 온 김씨는 그래도 수술을 받겠다면 비용을 30%정도 추가부담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수술날짜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서울 C병원. 수술칼 등 의료기기 소독에 산균력이 뛰어난 산화에틸렌 가스 대신 산균효과가 떨어지는 와이덱스를 사용하고 있다. 또 수술중 감염방지를 위해 사용하는 소독포나 수술후 상처부위의 출혈을 막는데 쓰는 헤모백 등의 사용량도 대폭 줄였다.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D병원은 어떤가. 물자절약을 이유로 환자들에게 오줌주머니 대신 거동에 불편하고 감염 우려도 있는 링거액병을 쓰도록 하고 있다. E병원. 고가 의료장비를 사용하는 치료방사선과를 폐쇄해 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왔다갔다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일부 재로나 약은 환자들에게 직접 구입토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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