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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임현진 서울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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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임현진 서울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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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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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한국사회의 키워드는 IMF다. 먹고 자고 입는 모든 것이 온통 IMF에서 시작하여 IMF로 귀결된다. IMF탕 IMF난로 IMF청바지 등이 그 좋은 보기다. 이처럼 국가부도로 인한 돌발적인 경제한파가 우리 생활에 주는 주름살은 매우  깊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즉자적 인식과 대응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다. IMF사태의 본질을 냉철히 파악하지 않고는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IMF사태의 밑바탕에는 「정부­기업­은행 사이의 근친상간」이란 원죄가 자리잡고 있지만 초국적 금융자본을 주무르는 「투기꾼들의 장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냉전체제의 해체이후 자본주의는 전지구를 석권하면서 시장복음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국가는 물러나라는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세계화의 숨겨진 이데올로기다. 신자유주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정글의 법칙을 선호한다. 이러한 정글 자본주의아래에선 삶의 질과 사회정의는 공허한 가치일 뿐 강한 자만이 살아 남게 되어 있다. 복지사회의 대명사인 유럽 선진국들을 보라. 지난 10여년간 실업자 수효는 두배나 증가했고 거의 매일 시위자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오늘의 국제자본은 산업자본보다 금융자본이 주된 핵이다. 이러한 초국적 금융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개도국에 대한 생산·투자보다도 주식 채권 시장의 전폭개방을 요구한다. 시장개방의 전도사로서 IMF는 그러한 초국적 자본의 원활한 작동을 도와주는 기능을 보이지 않게 수행한다.

 지금와서 IMF와의 구제금융을 둘러싼 협상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그러나 이번 협상은, 말이 개혁이지 개혁이란 포장아래 국내시장의 완전개방을 위해 내민 항복문서에 서명한 것과 같다. 물론 우리 스스로가 평소에 정부혁신 재벌해체 금융개혁 고용조정에 게을렀다는 점에서 이는 자업자득이다. 타율에 의한 개혁의 대가는 그만치 크다.

 이제 외국인은 건물 토지 주식 채권 회사를 거의 아무런 제한없이 매수할 수 있다. 우리의 한정된 수출 역량을 감안할 때 해외로부터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외채상환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는 기업이나 은행을 새로 신설하기보다 기존의 것들을 인수·합병하는 형태를 국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해 현수준의 우리 산업과 금융의 능력을 감안할 때 외국자본의 M&A공세 앞에 살아남을 기업과 은행이 그리 많지 않다는 무서운 사실을 시사해 준다. 「빈대 잡다 집 태운다」는 속담은 필경 이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분명 IMF의 표준처방에는 가시가 들어 있다.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IMF는 외채위기를 맞은 개도국들에게 경제의 단기적 안정화와 장기적 구조조정이란 명목으로 대외개방을 줄기차게 강요했다. 우리가 지금 추진중인 국내자본시장의 개방, 대외거래의 자유화, 정부지출의 감소를 위한 재정긴축, 국영기업의 민영화, 경제활동에 관한 정부규제의 완화 등이 주요 정책내용이다. 물론 대외개방 자체는 나쁠게 없다. 문제는 국가개입이 축소되고 시장기능이 강화되는 경우 우리와 같이 펀더멘탈이 약한 나라가 국제자본의 유동성을 견디어 낼 수 있는가의 여부다.

 실제로 최근의 아시아 경제위기가 보여주고 있듯이 세계 각국의 통화 금리 주가 환율은 지구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흐름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세계은행은 그 자매기관인 IMF에 대해 환투기를 방지할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바 있다. 세계금융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국제중앙은행」을 새로 창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미국의 대리자로서 IMF가 개도국의 시장개방을 통해 선진국의 투기성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위기를 불러 재앙을 낳을 수 있다. 우리의 앞날에는 만성적인 실업고통, 기업부도, 경기침체, 가계파산, 물가불안 등 공동체의 결속을 해치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IMF사태로 불거진 위기를 우리 사회의 기본 틀을 바꾸려는 기회로 적극 활용하지 않으면 미래는 밝지 않다. 미국도 대공황이후 「뉴딜」을 통해 오늘의 국부와 민생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통상 새정권은 새술을 새부대에 담을 수 있는 강한 입지를 지니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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