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신속한 재벌개혁의 길/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전문가 진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신속한 재벌개혁의 길/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전문가 진단)

입력
1998.02.10 00:00
0 0

◎“불공정거래 철저 차단 공정경쟁 통한 ‘적자생존’ 이끌어야 소액주주 권한 강화도 경제구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하였던 정리해고를 노동계가 수용하였으니 다음은 재벌들의 차례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다. 비상경제대책위는 경영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재벌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적대적 M&A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간접적인 정책수단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내에 가시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들이며, 기득권층들의 반발에 부딪히면 실패로 끝날 것이 자명하다.

 현재까지 신속한 재벌개혁의 방안으로는 두가지가 제시되었다. 첫째는 재벌들끼리 업종을 교환하여 전문화하는 빅딜이며, 둘째는 IMF가 주장하는 고금리를 유지하여 한계기업을 도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고금리정책은 중소기업들이 유탄에 맞아서 흑자도산하는 등 부작용이 너무 크다. 빅딜도 정부가 모든 것을 교통정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인 빅딜이 논의되는 이유는 재벌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으며, 이번에 실패하면 다시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재벌들은 개혁이 강압적이어서는 안되고 시장원리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시장적인 수단으로 생존하고 있는 재벌들이 자신들의 구조개혁에서 만큼은 시장원리를 주장하는 것은 역설적인 모순이다. 정경유착으로 사업권을 따내고, 상호지급보증과 부당내부거래로 계열사를 지원하고, 총수가족이 소액주주들의 재산을 탈취하는 것은 시장원리가 아니다. 더구나 총수의 취미 때문에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사업을 하고,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여 2세에게 재산과 경영권을 세습하고, 광고와 로비력을 동원하여 언론보도를 막는 행위들이 시장원리가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민주적 시장경제를 표방한 신정부가 자기모순적인 강압수단을 사용할 수 없으며, 정치적 압력을 동원한 강압적인 개혁이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과거의 경험에서 배웠기 때문에 재벌개혁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서 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시장원리에 근거하여 빠른 시일내에 재벌개혁을 할 것인가이다.

 시장원리에 충실하면서 빠른 재벌개혁을 할 방안이 있다. 시장경제의 가장 중요한 법칙은 공정경쟁이다. 경쟁에서 이긴 기업만이 살아 남고, 공정한 경쟁에만 생존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것이 시장경제이다. 따라서 재벌들의 모든 반시장적인 불공정거래를 공정거래로 돌려 놓아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의한 재벌개혁의 방안이다.

 금융시장이 경색된 지금의 상황에서도 재벌들은 부실한 계열사에 불법적인 자금지원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금여유가 있는 계열사가 금융기관에 예금을 해주고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이를 다시 부실한 계열사에게 대출해주도록 하는 불공정 자금거래를 차단하면 한계기업은 자동으로 정리된다. 계열사의 물건을 비싼 값에 사주는 불법적인 자금지원, 총수가족 소유의 비상장회사에 수의계약을 하여 이익을 넘겨주는 부당내부거래, 총수개인의 재산이나 계열사의 자금을 관리를 해주는데 악용되는 계열 금융회사의 내부거래 등을 차단하면 구조개혁은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소액주주들의 시장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있다.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소액주주들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대표소송권의 요건을 단독주주권으로 바꾸고, 경영진이 자신이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재벌개혁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비상경제대책위원회가 마련한 재벌의 구조조정안에는 공정거래를 이용한 개혁조치는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소액주주 권한은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한 것보다 크게 후퇴하여 실질적인 권한행사가 불가능하도록 되어있다. 비대위는 대표소송요건을 현행 0.5%에서 0.05%로 낮추어서 권한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0.05%의 지분은 삼성전자의 경우에 40억원, SK텔레콤의 경우에는 17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선진국에서는 1주를 가진 주주도 제기할 수 있는 대표소송권을 엄청난 돈을 가진 주주만 제기할 수 있도록 해놓고서는 시장기능에 의한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노동계가 먼저 고통분담을 하였다. 이제 재벌이 스스로 개혁하여 고통분담의 의지를 보여줄 때이다. 그리고 김대중 당선자는 민주적 시장원리에 가장 부합하는 공정경쟁과 소액주주권한을 동원하여 조속한 재벌개혁을 단행하여야 할 때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