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1년 1월6일 미국 의회에 보내는 연두교서에서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네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그중에 으뜸은 표현의 자유이고 그 다음이 신앙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언론의 자유라는 말로 바꾸어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어찌하여 언론의 자유를 가장 소중한 자유로 여겼는지 그것이 늘 궁금했는데 군사정권하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언론의 자유가 없으면 결국 아무 자유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박정권하에서, 그리고 전정권하에서, 말하는 자유와 글쓰는 자유는 완전히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정권을 찬양하거나 권력의 정상에 앉은 이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자유는 있었지만 비판할 수 있는 자유는 손톱 만큼도 없었습니다. 시인도 문인도 끌려가 매를 맞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등 말못할 곤욕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70년대에 있었던 「동아사태」라는 것을 기억하시지요. 천관우씨, 송건호씨를 비롯해 해직된 기자가 수십명이었고 그 신문사에는 광고를 주는 기업이 없어 광고란이 몽땅 백지가 될 수밖에 없던 것을 학생들이나 양심이 살아있는 시민들이 푼돈을 모아 신문사에 보내 그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운 것이 사실입니다.
남산에 자리잡고 있던 당시의 중앙정보부는 생사람 잡는 무서운 기관이었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느 해엔가 서울대법대의 최종길 교수를 조사 도중에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가 정보부의 화장실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한 것처럼 꾸몄던 그 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사상계」의 장준하씨를 꼬여 함께 등산을 갔다가 그를 의문의 죽음으로 몰아넣고 마치 그가 낭떠러지에서 실족하여 추락사한 것처럼 꾸몄던 그자는 아직 살아있을까요, 이미 죽은 것일까요.
대통령당선자께서 겪으신 억울한 일들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일본에서의 납치사건이 아니겠습니까. 그 어머어마한 음모와 흉계에 관련된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겠지요. 그 사건의 주범들이 그리고 하수인들이 이 땅 어디엔가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80년 5월17일 전국에 계엄령이 확대선포되고 여러 죄없는 사람들이 연행, 구속되어 팔자에 없는 고생들을 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도 그리고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께서도 당시의 신군부세력에 의해 가혹하다고 할 만한 고된 시련을 겪었습니다. 당선자께서 겪으신 고초는 말과 글만 가지고 다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믿습니다. 「사형」 「무기」 「20년」, 드디어 「국외추방」. 생각만 해도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짓을 한 사람들, 인혁당 사건을 허위날조하여 하재완씨를 비롯해 7명의 죄없는 목숨을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바로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런 비극들이 연이어 발생했을때, 최종길교수나 장준하씨가 억울하게 죽었을 때, 하재완씨 등 7인이 한이 맺힌 세상을 그토록 허무하게 하직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당시 「광주폭동」(오늘은 민주화운동이라고 하지만)의 배후조종자로 몰려 사형이 언도됐을 때, 이 나라의 언론은 「이럴 수는 없다」고 한마디라도 한 적이 있었습니까. 제가 알기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권력의 편에 서서 권력의 횡포를 두둔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가 오늘 이 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저는 풀이하고 있습니다.
당선자께서 만일 요새 언론을 통해 울려퍼지는 당선자에 대한 찬양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김영삼정권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됩니다. 90%의 국민적 지지가 있다고 정말 믿으십니까.
이 나라의 언론은 죽은지 오랩니다. 언론이 죽어서 우리가 다 죽은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살려면 언론이 거듭나서 제구실하며 살아야 합니다.<김동길·전 연세대 교수>김동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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