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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 옥류천 어정(차따라:40·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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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 옥류천 어정(차따라:40·끝)

입력
1998.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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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맛 그대로 차고 담백한 ‘왕가의 찻물’/1636년 인조가 샘 조성/인근 서재선향재 기둥엔 “새로 고저차를 달인다” ‘신팽고저차’문구가 뚜렷창덕궁 후원, 비원을 거닐어 보면 곳곳에 스며있는 조선 왕실의 차향을 느끼게 된다. 옥류천이 흐르는 후원 깊숙한 계원쪽 차향이 더욱 짙다. 조선 3대 태종이 만든 비원은 왕과 왕자들이 공부하고 수신하며 산책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때로는 사냥도 하고 무술을 익히고 제단에서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기도 했다. 자연에 인간이 동화할 수 있도록 한 자연주의 조원양식으로 꾸며졌기에 이런 일들이 더욱 가능했으리라. 이 점에서 비원의 매력은 밖에서 바라보도록만 되어있는 경주 안압지와는 또 다르다.

 부용지와 애련지를 지나면 오른편에 사대부의 민가양식으로 지은 연경당이 나온다. 왕과 세자가 공부하던 곳이다. 사랑채 마당 동쪽에 서재인 선향재, 뒷동산에는 단청을 하지 않은 자그마하고 소박한 정자인 농수정을 세워 놓았다. 선향재 기둥, 왼켠 첫 주련에 「신팽고저차」라고 써놓았다. 「새로 고저차를 달인다」는 뜻이다. 「고저차」란 중국 저장성 서북쪽 고저산에서 나오는 「자순차」. 자주빛 차 움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자순차중에서도 고저차는 특히 빛과 향이 아름다워 해마다 왕실에 진상됐다.

 고저차는 차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당나라 시인 육우를 만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육우는 「다경」을 쓰면서 차등급을 「자줏빛이 첫째요, 초록빛이 다음이다. 차 움이 첫째요 차 싹은 그 다음이다」고 나누었다.자순차는 진감국사(774∼850)와 매월당 김시습(1435∼1493) 등 뛰어난 차인들의 글에도 자주 보인다.

 선향재를 둘러보다보면 오래된 옛 책에 빠져있다 한 잔 차를 마시면서 책향기 속에 피어오르는 은은한 차향을 느꼈을 왕과 왕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공부에 지치면 선향재 바로 위 동산에 있는 사방 한 칸짜리 자그마한 농수정에 올라 비원의 아름다움을 내려다보며 또 한 잔 자순차를 마셨을 것이다.

 연경당을 지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면 취한정이 모습을 보이고 그 아래쪽에 옥류천이 나타난다. 취한정 왼쪽 소요정에 서면 서쪽 산비탈 근처에 샘이 보인다. 네모난 돌두껑이 덮혀 있다. 창덕궁의 수많은 샘중에서 가장 물이 좋은 어정이다. 1636년 인조때 팠다. 바위속에서 솟아 오르는 석간수는 우물옆에 직경 30㎝ 정도로 파놓은 둥근 못에 일단 고였다가 동쪽으로 흐르도록 했다. 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출동류」다. 이 물은 중간에 솟아 있는 높이 2m가량의 「산」자 모양의 바위뒤쪽을 돌아 바위앞을 「을」자를 그리며 흐르도록 곡수구를 얕게 파 산 높이 만큼의 폭포를 만들어 그 아래로 떨어지도록 했다.

 바위 아래에 새긴 「옥류천」세 글자는 인조가 직접 썼다. 그 위에는 1690년 숙종이 지은 오언시가 눈길을 끈다.

 「흐르는 물은 삼백척 멀리 날아/ 구천에서 떨어지는 물/ 흰 무지개 일고/ 온 골짜기에 천둥 번개로다」

 높이 2m가량의 작은 폭포지만 그 위에 버티고 앉은 바위산과 비교하면 「날아 흐르는 물 삼백척」이란 표현이 실감이 난다. 고작 2m의 산이지만 200m 높이의 큰 바위산이라고 상상을 하면 삼백척은 삼천척 높이의 장관이 된다. 소요정에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이 경치를 보면 누구나 감탄하게 된다. 옥류천 일대는 어정 계류 석교 지당 수전 암반 정자 폭포 수림이 한데 어울려 절묘한 계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정에서 솟아 오른 물이 흐르는 바위 뒤와 옆, 앞의 편편한 암반에 파놓은 활처럼 굽은 곡수구는 경주 포석정과 같은 분위기다. 예전에는 「곡수연」이라는 풍류놀이가 있었다. 굽이치는 물가에 앉아 술잔을 띄운 선비들이 그 술잔이 자기 앞을 지나기 전에 시를 짓고 잔속의 술을 마시는 풍류다. 「유상곡수」라고도 했다.

 어정이 있는 북쪽에 만들어놓은 손바닥만한 논(수전) 옆의 돌화로는 차를 끓이는 화로였을 것이다. 화로에서는 지금도 숯이 탄 재들이 나온다. 왕과 빈, 또 신하들이 곡수가에 앉아서 어정의 물로 차 한잔 끓여 마시지 않았을리 없다. 지금 마셔 보아도 어정 물 맛은 일품이다. 차고 담백하다.

 조경기술사 박성현(동아기술공사 이사)씨는 어정의 물이 모이도록 샘 바로 옆에 파놓은 둥근 수조를 날일자이자 알터, 하늘로 풀이 했다. 물길이 돌아가는 새을이나 몸기자의 모양의 곡수, 그 중간에 앉아 있는 뫼산자는 7,000년전 동이족이 모여 살던 중국 산둥성 대문구에서 출토된 토기에 음각되어 있는 것처럼 아침단과 빛날 욱자를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또 일자는 하늘로, 을이나 기자는 우리 민족의 별이자 신앙인 북두칠성으로, 산자는 팔괘에서 동북쪽 간 방향에 있는 이 땅으로 풀이한다. 『삼신사상과 우주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우리민족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독창적인 조경예술』이라는 것이다.<김대성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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