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근교 푸슈키노시에는 「로시얀카」라는 이름의 여자농구단이 있다. 이 팀이 지난해 10월 평양에 가서 북한대표팀과 세차례 친선경기를 가졌는데 외부에 전해진 그 경기의 모양이 가관이다. 이타르 타스통신이 러시아팀 감독의 호소를 인용해 보도한 「봉변」의 전말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북한팀은 실력이 달려 게임이 잘 안풀리자 어떻게 해서든 이겨 보겠다고 러시아선수들의 온몸을 닥치는 대로 할퀴고 때리고 찌르면서 온갖 반칙행위를 공공연히 저질렀다. 심판도 한통속이어서 5반칙을 범한 선수를 퇴장시키지도 않았다. 오히려 항의하는 러시아선수들을 게임 막판에 코트에서 쫓아냈다. 관중까지 합세해 러시아팀을 야유하는가 하면 벤치에서 쉬고 있는 선수들에게 고무총을 쏴대기도 했다는 것이다.
변을 당한 러시아팀 감독의 고발에 감정이 섞였을 수도 있고, 사건을 보도한 통신기사에 과장이 있음직도 하지만, 이런 거품을 걷어내고 뼈대만을 추려 보더라도, 이 사건에서는 기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리가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는 북한 스포츠팀의 경기 모습은 꽤 모범적이다. 안에서는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밖에 나와서는 유별나게 난폭한 태도로 물의를 빚었다는 얘기는 드물다.
그 북한사람들이 어째서 러시아팀과의 경기에 그렇게 말도 안되는 짓을 했을까. 그것도 무슨 나라체면이 걸린 국가대항경기도 아니고 친선경기가 아닌가. 그 단서는 아무래도 김정일의 농구취미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작년 8월 북한언론은 북한 최초의 프로농구팀이 창단됐다는 소식을 외부에 알렸다. 팀 이름은 「태풍」이다. 김정일이 몸소 지어 준 것이다. 김은 북한사람들의 신체조건으로 세계 제일의 강팀이 되려면 장거리 슛을 잘 넣도록 기술을 연마해야 할 것이라고 선수들에게 「귀중한 교시」까지 내렸다는 것이 보도의 내용이다.
그 한달 뒤 북한 전역에서는 연령별로 가장 키 큰 젊은이를 뽑는 이색 경연대회가 열렸다. 보름간의 지방대회를 거쳐 뽑힌 대표들은 북한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 행사의 하나로 평양에 모여 최종 선발대회를 치렀다. 북한언론은 이 대회가 키 크고 건강한 학생을 뽑아 특별히 국가대표 체육인으로 교육시키자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노동신문은 농구가 국가방위력 향상의 열쇠라고까지 주장했다. 모든 남녀 젊은이들은 「위대한 혁명과업, 노동과 국방」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신체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며, 그 가장 좋은 방법은 농구라는 것이다. 평양시내 중심가에는 농구 열심히 하기 운동을 선전하는 내용의 포스터가 나붙었다.
김정일은 왜 하고많은 스포츠 중에 하필 농구에 착안한 것일까. 우선 체격이 서양인과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 말이다. 그 계기는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키가 큰 북한의 「농구천재」 이명훈의 발견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지금 캐나다에서 훈련을 쌓으면서 미국 프로농구연맹(NBA)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세계 최강의 미국 농구를 배워 귀국한 뒤, 북한 전역의 장신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과 한 팀을 이룬다면 NBA팀과도 한 판 겨뤄 볼만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김정일의 구상인지 모른다.
앞으로 미국과의 교섭이 진전을 볼 경우, 스포츠교류가 먼저 활기 있게 추진될 것이다. 그때 미국에서 제일 센 농구팀을 평양에 데려다가 그 큰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김정일의 이른바 「광폭」정치식 발상이다. 무슨 일이든지 한번 하겠다고 마음 먹었으면 배포가 크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광폭」인지 「광폭」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농구취미는 농구경기장에 몰리는 남쪽의 「오빠부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일지 모른다. 남북교류의 길이 다시 열려 서울과 평양에서 농구로 남북이 맞겨루게 될 때 남쪽팀은 과연 미국을 가상적으로 삼아 준비한 북쪽팀을 이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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