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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의 그늘/도쿄=황영식(특파원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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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의 그늘/도쿄=황영식(특파원 리포트)

입력
1998.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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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중」이라는 한자를 일본말로 「신추」라고 읽으면 우리말과 같이 「마음속」「내심」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신주」라고 읽으면 엉뚱한 뜻이 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동반 자살, 즉 「정사」다. 여기에 「무리」를 붙인 「무리신주」는 「억지 정사」쯤이된다. 한쪽이 목숨을 빼앗고 뒤따라 자살하는 행위.

 지난달 24일밤 도쿄(동경) 오타(대전)구의 한 서민아파트에서 무직의 남편(68)은 아내(70)의 목에 전기줄을 감았다. 아내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보라색꽃 한다발을 사다가 아내 머리맡에 두고 향을 피웠다. 칼로 양손목을 그었다. 목숨은 끈질겼다. 다시 죽을 용기도 없었다. 사흘만에 경찰서를 찾아와 『제발 나를 죽여달라』고 빌었다.

 심장병이 깊은 두사람의 수입은 월13만엔의 생활보조비가 전부였다. 집세를 내고 나면 목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돈이 떨어지면 같이 죽자』는 오래된 맹세. 1월치 집세는 내지 않았고 방에는 3만엔만이 남아 있었다.

 다음날인 25일 도쿄 세타가야(세전곡)구의 맨션아파트에서는 아버지(88)와 네째아들(45)이 나란히 숨진 채로 발견됐다. 병때문에 일자리가 없었던 아들은 아버지와 둘이서 살았다.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유서와 거의 바닥난 예금통장이 탁자위에 놓여 있었다. 같은날 도쿄 히가시야마토(동대화)시에서는 딸(56)이 아버지(86)의 목을 찌르고 자신은 배를 찔러 숨졌다. 병치레가 끊이지 않았던 딸은 아버지를 보살필 힘이 없었다. 거동할 기력도 없는 아버지는 중상을 입고 홀로 남았다.

 더이상 버틸 기력이 없어 사랑하는 가족을 제손으로 죽이는 사람들. 핵가족화와 노령화의 속도를 따라 잡기에는 너무 더딘 사회보장. 외로움을 덜어 줄 이웃도 없는 빽빽하기만 한 도시.

 주위를 돌아 볼 겨를도 없이 「성공한 이웃나라」를 급하게 따라 온 우리가 아직 조금이라도 이런 모습에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덜 성공했기 때문이다. 「IMF 가난」이 혹독하다고 급히 벗어나는 데만 매달린다면 당장 눈앞에 이런 모습이 닥칠 지도 모른다. 이제는 좀 천천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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