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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만 했으면 그만인가/김석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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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만 했으면 그만인가/김석준(아침을 열며)

입력
1998.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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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적인 금융위기를 맞아 국민들의 고통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고 서로가 할 일은 다했다는 책임회피만이 무성하다. 한국은행이 그렇고 재경원이 그렇고 심지어 안기부마저 그렇다. 모두가 일찌기 금융위기를 보고하고 그 위험을 경고했으니 제 할 일은 다했다고 한다. 기업이나 정치권은 정부의 무능만 탓한다. 모두 「내 탓」보다 「네 탓」에만 열심이다. 정부, 민간 가리지 않고 책임을 대통령과 청와대에 떠넘기고 있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않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다. 때문에 조속히 경제청문회를 열어 실상을 철저히 밝히고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요구이다. 그동안 수많은 대형사건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대책을 세우는 시늉을 했지만 국가경영은 더욱 부실해졌고 급기야 국가부도 직전의 위기로까지 사태가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조사나 처벌만으로 그 악순환의 고리가 단절될 수 없음을 지금까지의 경험이 입증하고 있다.

 이제 근본적인 조치가 있어야 할 때이다. 마침 정부조직개편과 행정개혁작업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민주화시대에 걸맞는 책임관료제와 공직자 능력향상을 위한 본질적인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 개발연대의 권위주의적인 통제에 익숙했던 체질로부터 탈피하여 민주화시대의 자율책임체제에 적합한 경쟁력을 갖춘 정부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부축소나 인력감축과 같은 하드웨어의 개편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를 함께 바꾸는 일이다.

 첫째,「투명한 민주정부」의 정착을 위한 법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행정절차법이나 행정정보공개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인사청문회와 시민감사청구제를 도입함으로써 투명한 정부를 정립시키도록 해야 한다. IMF위기에 대한 각 기관과 관련자들의 활동이 「투명」하게 공개될 때 관료제 조직의 가장 큰 장점의 하나인 전문성 합리성 및 책임성이 효과적으로 확보될 수 있다. 특히  차기정부가 책임있는 정부가 될 수 있도록 인사청문회는 당연히 출범때부터 도입해야 할 것이다.

 둘째,「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위해 국가경영의 중추기관인 최고정책결정기관의 기구와 권한은 축소하고 정책조정 및 보좌기능은 효율화하면서 개별 부처의 권한과 책임은 강화하는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세계화·정보화시대의 첨예한 국가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체제속에서 개별 국가가 얼마나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느냐의 문제는 개별기업이나 기관은 물론 국가자체의 존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번 IMF금융위기가 바로 생생한 증거이다. 때문에 「대통령부」의 기능과 역할이 적절하게 재조정되어야 한다. 현 정부의 개혁정책과 규제혁신정책이 예산과 인사권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막강한 재경원을 포함한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으로 좌초된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개별부처의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정비가 있어야 한다. 장관의 짧은 재임기간은 별개로 하더라도 인사 예산 조직 평가 등에서 책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총정원제, 총액예산제, 인사혁신과 조직관리혁신 및 전자정부의 도입이 필요하다.

 셋째,「유능한 정부」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공직자들의 전문성과 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외부전문가충원제 팀제 직위분류제 등을 도입, 외부인사의 과감한 발탁이 있어야 한다. 특히 IMF위기극복을 위해 통상전문가를 외교통상부의 장관으로 임명하고 통상본부의 직원도 국제적인 감각과 능력을 지닌 전문가들로 충원하는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넷째,기존 공직자들의 의식을 민주화시대에 걸맞게 자율권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조속히 바꾸어야 한다. IMF금융위기를 맞아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도 바로 어느 누구 하나 그 직위의 상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지고 사퇴하거나 자책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부도를 낸 중소기업인들이 삶을 마감함으로써 종업원이나 주위사람들에 대해 속죄하는 마당에 공직자는 어느 누구도 속죄를 구하는 사람이 없다. 단순히 보고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것은 성숙한 선진관료조직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예로부터 우리의 선비들은 관직을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그것이 실현되지 못할 때에는 목숨과 명예를 모두 걸고 싸웠던 일을 지금 새삼스럽게 기억하고자 한다. 최근 일본기업의 간부가 자결로써 용서를 빈 사건은 지나친 일인가. 지금이야 말로 공직자들은 자신의 생애와 명예를 걸고 헌신함으로써 국민의 끝없는 분노를 국가번영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이화여대 정보과학대학원장·정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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