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LG전자의 전·현직 연구원 16명이 산업스파이 혐의로 구속됐다. 2일 수원지검에 적발된 젊은 두뇌들은 연간 6,000만∼1억원 정도의 돈을 받고 그들이 몸담았거나 재직중인 회사가 애써 개발한 첨단 반도체 설계도면과 회로도를 빼내 대만에 팔아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이 팔아 넘긴 64메가D램은 차세대 컴퓨터인 펜티엄Ⅱ급(686) 이상 PC에 이용되는 첨단 반도체 소재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나라다. 이러한 기술을 경쟁국에 빼돌린 것은 나라를 팔아 먹은 것과 다를 바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삼성전자가 6년동안 7,000억원의 비용을 들여 개발한 64메가D램은 우리나라의 수출 전략상품이며, 전자 3사의 올해 수출목표로 160억달러가 잡혀 있다.
이 보배로운 수출상품 복제에 혼신의 노력을 쏟아부어 온 대만은 올 연말이면 이 제품 양산의 길에 들어서 우리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들이 유출한 기술이 대만의 기술개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산업매국노」라는 욕을 먹은들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본인들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이전해 준 것이므로 산업스파이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술을 빼내온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한다니 혐의를 면할 길은 없어 보인다.
말할 것도 없이 산업기술은 국가경제 발전의 요체이다. 우리가 지금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첨단기술 도입에 얼마나 많은 공과 비용을 들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우리는 이번 일을 산업기술 보안체계 점검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기술을 도난당한 업체들은 이 특급 기업비밀 보안을 위해 반도체 생산라인엔 연구원 외에 누구의 접근도 금지하는 「성역」으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폐쇄회로 TV나 ID 카드를 이용한 출입문 개폐장치 정도의 보안 시스템은 내부소행도 막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이다. 산업계 전반의 기술정보 보안의식이 더 제고되어야 하고, 정부도 제도적인 산업정보 보안책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이 기술정보 보안을 기업경영의 3대축으로 삼고 1천억달러 가까운 비용을 쓰는 것도 이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국제 산업첩보활동의 천국이라 한다. 관계 당국은 국내 거주 외국인 가운데 400명 정도를 요주의 인물로 주목하고 있다. 그들은 위장취업 미인계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 산업기술 빼내기에 혈안이 돼 있다. 이런 때에 우리 국민이 앞장서 우리 기술을 팔아 넘긴 일이 간과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직장과 기술과 학력을 가졌다 해도 국가경제가 무너지면 누구도 혼자만 잘 살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는 이 잔인한 겨울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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