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독점력만 키우고 총수전횡도 못막아 기업별 독립경영이 해결책” 차기 정부는 재벌 구조조정정책으로 내놓았던 빅딜을 일단 유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재벌끼리 서로 업종을 교환해 각 재벌이 2, 3개의 업종에 집중토록 한다는 것이 빅딜의 내용이다. 말하자면 각 재벌이 주력업종 이외의 계열기업은 매각하고 주력업종에 해당하는 기업은 사들이도록 한다는 것이 빅딜이다.
이 정책은 실현가능성이 적고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점 때문에 유보가 불가피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의도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빅딜이 실시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수백개의 대기업들이 매매되어야 한다. 단시일내에 강제적 조치없이 과연 이런 거래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빅딜은 재벌제도 그 자체를 계속 인정한다는데 더 큰 문제점이 있다.
한 재벌은 수십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리면서 수십개 업종을 영위하고 있는데 이중 2,3개의 업종만 선택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설사 주력업종을 선택했다고 해도 이 업종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들을 한꺼번에 처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10개 재벌이 이런 정책을 추진한다면 수백개의 기업이 한꺼번에 거래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정부의 종합적인 계획과 강제성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이것은 오히려 재벌을 해체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정책이다.
실현성이 없는 정책을 억지로 추진하면 결국 생색내기 내지 성의표시 정도에서 극히 일부의 빅딜만 시행될 것이 뻔하다. 각 재벌이 한두개의 상징적인 기업을 처분하는 선에서 빅딜이 시행될 것인데 이것으로는 의도했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빅딜은 실패가 뻔한 정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재벌별로 주력업종을 갖도록 한다는 업종전문화정책은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는 정책이다.
빅딜이 중복과잉투자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었더라도 이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빅딜을 통해 2,3개 재벌의 동일업종 기업을 한 재벌에게로 몰아주어 그 업종의 기업수를 줄인다는 것은 중복과잉투자를 해소하기 보다 그 재벌의 독점력만 키워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 재벌이 전자관련 기업들을 독차지하고 다른 재벌이 자동차관련 기업들을 독차지한다면 그 결과는 매우 위험스럽다. 이렇게 되면 재벌마다 더욱 큰 시장독점력을 가지게 될 것이 뻔하다. 결국 재벌들은 효율성 향상보다는 독점력 제고로 수익성을 올리게 되고 국제경쟁력은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
더군다나 빅딜은 재벌제도 그 자체를 그대로 인정하는 정책이다. 재벌문제의 핵심은 그룹식 경영과 총수의 경영전횡에 있다. 수십개 기업을 한 그룹으로 묶어 총수가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제도가 재벌인데 빅딜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예컨대 각 재벌이 업종수는 줄었어도 계열기업수는 그대로이고 족벌경영과 총수의 전횡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재벌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재벌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룹식 경영을 해체해서 기업단위로 독립경영이 이뤄지도록 하는 정책수단이 도입되어야 한다. 기업단위로 독립경영이 이뤄져 수익성 없는 기업은 도태되고 수익성 높은 기업은 더 성장할 때 기업별로 전문성을 갖추며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수십개 기업을 거느린 재벌그룹이 주력업종을 갖고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은 접근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전문성은 개별기업 단위로 갖는 것이며 각 기업의 업종 그것이 바로 그 기업의 주력업종이다.
기업단위로 독립경영이 이뤄지면 총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시장기능에 의해 M&A가 활성화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업의 전문성이 커지고 중복과잉투자가 해소되어야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향상될 수 있다. 빅딜은 시장을 통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다. 과거에 수없이 해온 부실기업 정리정책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빅딜의 결과는 결국 새로운 형태의 재벌을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또 빅딜을 지원한다는 구실 하에 재벌들에게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면 재벌을 더욱 살찌우는 결과만 나올 수 있다. 과거의 주력업종정책이 그러했다. 재벌별로 주력업체로 지정된 기업에 대해서는 여신규제를 풀고 여러가지 세제혜택을 부여한 결과 다른 계열회사가 주력업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을 받아 업종전문화도 실패하고 재벌은 오히려 더욱 비대해졌다. 빅딜도 재벌들에 의해 역이용될 수 있는 정책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