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인 기업측 부탁 외면못해 분식회계/감사주체가 되레 기업부정 눈감아 준셈 회계법인에 몸담은 공인회계사들 사이에 떠도는 자조적인 말이 있다. 「포상휴가」라는 것이다. 부실 회계가 드러나 감독기관의 징계를 받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회계법인은 이런 회계사에게 『수고했으니까 잠시 쉬라』면서 격려까지 해준다. 감독기관의 징계가 회계법인에서는 훈장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A회계법인의 K씨(38). 『회계사들은 감사 대상기업의 상품재고량과 금융자산 어음 수표 등을 직접 확인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난해 감사를 맡은 기업에 현장실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거부하더군요. 그러면 감사의견서를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를 거부한다는 뜻이죠. 얼마 있지않아 회계법인에서 명령이 날아왔습니다. 실사를 한 것처럼 의견서를 작성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업감사 현장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기업이 회계법인의 계약자(파트너)들과 회계 수위를 조절한 뒤 이를 감사를 직접 담당하는 회계사들에게 강요한다. 문제점을 지적하려해도 기업주가 파트너에 연락, 눈감아주도록 요청한다. 회계법인조직 체계상 회계사는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회계사는 기업의 분식결산이나 탈법, 편법 등을 지적하고 기업의 재무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재무제표를 작성해야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은 회계법인의 고객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회계법인은 철저한 회계를 해야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분식을 눈감아주거나 합법적으로 위장해주는 역할까지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먹이사슬이 형성되어있는 것이다. 외국의 신용평가기관에서 한국기업의 재무제표를 믿지않으려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C회계법인의 L회계사(37). 『기업에 대한 감사는 하나마나라는 것이 이 생활 10년간 내린 결론이죠. 기업의 회계분식에 대해서는 일종의 공범이죠. 그러나 회계사들에게는 올해가 가장 두렵습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기업의 재무제표에 이의를 제기하고 회계법인이나 회계사에게 소송을 할 것입니다. 회계사들은 이제 안팎으로 시달리게 됐어요』
젊은 회계사들은 기업의 회계 수주를 전문적으로 하는 파트너들을 「찍새」,실무를 담당하는 자신들은 「딱새」라고 부른다. 찍새는 고객인 기업과 밀착관계에 있다. 기업의 구미를 맞춰야 다음해 수주를 받을 수 있다. 찍새들은 기업의 요구대로 딱새들을 몰아친다. 이 때문에 기업회계가 구조적으로 엉망이 된다. 잘못돼도 찍새는 책임이 없고 딱새만 징계를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회계사들은 재벌기업에 대한 감사를 가장 편하게 여긴다. 일하기도 편하고 징계를 받을 일도 없다.
B회계법인의 J회계사(40). 『재벌회사를 감사하면 절대 안다칩니다. 재벌회사들은 감사를 받기전에 3∼4개의 재무제표를 만들고 회장부터 회계실무자들이 수차례 논의를 한 뒤 적당한 것 하나를 내놓습니다. 분식이나 편법도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설사 감사에 문제가 있었더라도 뒤탈이 없어요. 이미 감독기관에 철저하게 로비를 해놓기 때문입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회계조작 수법
1.연말결산을 위해 재고를 가짜로 만들어 올린다.
2.제품가치가 없는 불량재고를 정상재고로 올려 장부상 이익을 낸다.
3.외상판매 실적을 허위로 만들어 매출액을 늘린다.
4.생산설비 등 자산 가치를 과대평가,평가이익을 올린다.
5.못받게 된 외상매출금을 결손 처리하지 않는다.
6,쓰지 않은 경비나 비용을 쓴 것처럼 올리고 부품과 원자재 구입가격을 크게 부풀린다.
7.계열사간 실제 거래 없이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가공매출을 만들어 낸다.
8.계열사간 제품을 서로 팔고 되팔아 이중 매출을 올린다.
9.적자계열사에 빌려준 돈의 이자와 수수료를 감면해 준다.
10.제품을 원가격보다 훨씬 싸게 팔거나 비싸게 사들여 자회사를 지원한다.
11.올해 비용을 다음해로 넘기거나 다음해 비용을 올해 비용으로 처리한다.
12.이자로 지급된 돈을 거래처에 미리 준 선급금으로 처리한다.
13.생산설비 등 고정자산에 대한 감가상각액을 줄여 순이익을 늘린다.
14.외부에서 빌린 돈을 제품을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바꿔 놓는다.
15.외상으로 구입해 값을 지불하지 않은 미지급금을 장부에서 누락시킨다.
16.있지도 않은 외상 미수금을 만들어 영입수익을 늘린다.
17.퇴직금 적립기금을 실제보다 줄여 인건비 지출을 낮춘다.
18.임시로 들어온 자금이나 선수금을 매출액으로 올린다.
19.단기채무를 장기채무로 표시해 부채상태를 좋게 꾸며 놓는다.
20.사용이 제한된 예금이나 자산을 언제든 쓸 수 있는 돈으로 분류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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