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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시작일뿐/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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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시작일뿐/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입력
1998.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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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채협상 타결불구 위기는 겹겹이…/정치권·재벌부터 서민층까지 모두 책임” 며칠전 뉴욕에서 한국측은 국제채권은행단과의 줄다리기 협상에서 단기외채 240억달러중 20%는 2년짜리로, 나머지 80%는 2,3년짜리로 장기화하기로 타결해 단기 위주의 외채구조를 개선하는 길을 텄다. 그 대가는 민간금융기관간의 대차관계를 이미 정부가 보증하기로 한데다, 리보(LIBOR)에 1년짜리 2.25%, 2년이내 2.5%, 3년짜리 2.75%의 금리를 가산하기로 한 것이다.

 당초 미국 채권은행단의 높은 금리수준 요구에 대해서 우리측은 「높은 금리를 수용하자니 원리금 상환부담 때문에 걱정」, 「낮은 금리를 주장하자니 참여은행이 적을까 걱정」 사이에서 고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급한 것은 우리측이었고, 협상결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의 종결이 가시화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외환위기의 대외적 원인을 찾아보면, 90년대초 이래 국제금융시장에 유동성이 급속히 증가한 점과 헤지펀드 등 국경을 넘나드는 단기자금 흐름에 가변성이 높아진 점에 주목하게 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이란 자극적 용어를 만들어 신흥국가에 대한 자금대여 확대를 노린 것은 대여자측이었다. 한국 외채문제는 멕시코처럼 공공부문이 아니라 민간부문이 차입주체였다는게 특징이다. 이번 협상에서 민간부문의 부채를 정부가 대신 보증해주고도 멕시코의 경우보다 더 높은 금리를 받아들인게 아쉽다. 채권은행들이 떼이지 않게 보증한데다 높은 금리를 챙기도록 이중적 이익을 안겨준 셈이다. 이는 앞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대여자의 도덕적 불감증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음을 뉴욕 월가의 양심있는 금융인들은 인정하고 있다.

 외환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채권 비중이 가장 큰 일본계 은행이 3월말 결산을 앞두고 있어 이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인도네시아의 정치, 경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어 그 곳에 대한 60여억 달러의 한국 투자가 회수불능에 몰릴 가능성도 있다.

 한편 눈을 국내 요인에 돌려보면, 우리는 경제위기의 양파를 만나게 된다. 금세 알맹이를 드러내는 마늘쪽과 달리, 양파는 몇겹을 벗겨내도 속이 드러나지 않는다. 외환위기는 겉으로 드러난 껍질이다. 환율이 높은 수준에서 관리되었고, 쉬쉬하는 가운데 가용외환 보유고는 급속히 줄고 있었던게 드러났다. 그러나 외피를 한 껍질 벗기고 나면, 이것과 맞물린 실물경제위기를 보게 된다. 실물경제 부문의 위기는 한편으로는 차입자금의 힘으로 문어발식 사업확대에 주력하고 방만한 기업경영,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 이후 생산성 제고는 게을리하면서 임금 수준을 몇배나 올린 전투적 노동운동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껍질 더 벗기면 효율적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위주의 행정부, 그리고 비자금 등 정경유착 고리의 단절을 외면하고 있는 정치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또 한층 벗기고 속을 들여다보면, 전근대적 사회전통에 이른다. 가족중시 사상은 아름다운 전통이지만, 배타적 기업경영에 이르면 한국적 재벌기업의 모태를 이룬다. 정보의 투명성 결여도 이러한 모태에서 비롯된다.

 현재 감사원은 재경원, 한국은행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외환위기의 책임자를 색출하는 과정에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정치권에서는 국민은 책임이 없다는 말도 오가고 있다. 만일 경제난국이 모두 단순히 외환관리의 실수에 불과했다면, 이같은 책임자 색출은 의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여러 겹으로 층을 이루는 복합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국민 각계각층 모두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노조는 기업가에, 기업가는 은행에, 은행은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는게 요즘 세태다. 이러한 책임 떠넘기기는 경제위기 탈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크게는 비자금 정치인에서부터 작게는 자기 노력 없이 잘 사는 이웃을 질시해온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책임을 공감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시장과 경쟁을 전쟁에 비유한다. 그러나 전쟁 끝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시장흥정의 끝은 다르다. 흥정이 끝나면 쌍방 모두 떨떠름한 기분이 들어야 잘된 거래다. 우리 대중매체에서 협상결과를 보도할 때 이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 개선장군은 없다.

 부실금융기관을 퇴출시키는 등 금융구조개편을 지속하는 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는 일, 재벌문제 정리를 위해 결합재무제표를 조기도입하는 일 등 앞으로 할 일이 산적해있다. 강조하거니와 아직 경제난국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시작의 끝도 아니고, 다만 시작의 시작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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