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여자라고 무시 “작품으로 승부걸자” 이 악문 12년/이젠 인기몰이 PD로 당당하게 우뚝드라마 촬영장에 가보면 참으로 번잡하다. 카메라 조명 소품 전선줄같은 각종 장비가 그러려니와 수십명의 출연진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AD(보조연출자)를 비롯, 최소 20여명의 스태프가 시장을 이룬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총괄하는 PD는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남성 일색이다. PD가 되려면 방송국 입사후 최소 7∼8년의 AD기간을 거쳐야 하는 것도 연출감각은 물론 현장을 효율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통솔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KBS 박영주(39)PD는 그래서 눈길이 간다. 드라마 부문 PD로는 유일한 여성인 그가 모자를 눌러쓰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두울 셋 넷, 컷』을 외치면 촬영현장은 금세 쥐죽은 듯 고요해진다. 교양국과 라디오국에는 여성PD가 몇 있지만 드라마국에는 그가 유일하다. 81년 KBS에 입사해 교양국에서 활동한 5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드라마 분야에서만 일했다.
『드라마국에 오자 처음에는 주위에서 전혀 신뢰를 보이지 않더군요. 여자라는 것이죠. 그때마다 「좋다. 작품으로 승부를 걸겠다. 한번 멋지게 하고 나서 보자」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이러한 각오로 그는 지금까지 드라마 연출 데뷔작 「완전한 사랑」(드라마게임, 92년)을 비롯해 「TV소설길」(아침드라마, 96년), 「행복한 아침」(일요아침드라마, 97년) 등을 연출했다. 「길」의 경우 보통 아침드라마 시청률인 3∼5%를 훨씬 넘는 20%를 기록, 일요일에 재방송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설날특집극으로 「귀향, 그 짧은 이야기」를 선보였다.
박PD의 스타일은 속전속결형. 촬영 전날 미리 스토리 보드(연출 점검사항을 적어놓은 판)에 원하는 그림을 직접 그려놓고 촬영 당일 그림이 나오면 그대로 『오케이』하는 식이다. 김청이 주연한 「귀향, 그 짧은 이야기」의 경우 나흘만에 70%를 촬영했을 정도.
『PD가 되는 순간 여자 남자의 구분은 사라집니다. 결과로 말할 뿐이죠. 하지만 드라마만큼은 여성PD에게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소품이 하나라도 튀면 전체가 어색해질 정도로 매우 섬세하기 때문이죠. 또한 TV가 「클로즈 업의 예술」인 만큼 연기자의 자그마한 표정 하나하나를 잡아내는 데도 여성이 알맞습니다』
주로 현대물을 연출해온 박PD는 사극과 멜로물에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토대로 옛 여인들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드라마라면 자신이 적임자라고 한다. 전남대 회계학과를 졸업했고 여덟살짜리 남자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김관명 기자>김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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