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나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한국에서 홀로 보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의 친정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한달간이나. 해방과 자유의 날에 대한 기대감은 공항에서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허탈함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벌써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어느날 친구 호세와 우리 호텔의 노블레스 바에서 한잔하다가 우연히 건너편 자리에 앉은 두 예쁜 아가씨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는데 나는 가볍게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호세와 헤어져 주차장으로 가던중 아까 바에서 본 두 아가씨가 두리번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물어보니 주차한 차가 없어져 찾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정신을 발휘해 같이 차찾기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알게된 미스 박은 우리 호텔 근처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직장 여성이었다. 또한 노블레스 바의 단골고객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미스 박과 바에서 자주 마주치고 개인적인 얘기도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미스 박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사랑하면 할수록 그를 더욱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인물 좋고 직장 좋고 집안 좋은 장래의 남편감은 그녀에게 그다지 자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국 여성처럼 아름답고 현명한 여성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한국 남자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페인 남자들은 물론이고 서양의 남자들은 자기가 좋아하기로 작정한 여성에게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헌신한다.
그리고 그 작은 정성들만이 여성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하여튼 외로운 미스 박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비밀을 지킬 수 있는 말상대를 만났는지 나로 인해 많은 용기와 기운을 얻은 것 같았다.
무엇이든 털어 놓고 얘기하면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남녀간에는 더욱 더 그렇다. 미스 박과 나는 이렇게 그녀의 남자 친구 때문에 좋은 친구가 되어가는데 어느 순간 그녀를 여자로 좋아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나는 원래 미인에게 약한 편이다. 그녀와의 만남이 슬슬 불안해지자 불현듯 아내 생각이 났다. 그리고 토끼같은 두 아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어서 와 날 도와줘…. 그런 생각을 하며 집을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내와 아이들이 휴가 일정을 보름이나 앞당겨 집에 돌아온 것이었다. 나와 신정 연휴를 함께 보내려…. 아!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야! 내 아내는 아직 내게 세계 제일의 미녀이다.<르네상스 서울호텔 식음료이사·스페인인>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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