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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은 체제개혁 부른다/김수행 서울대 교수·경제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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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은 체제개혁 부른다/김수행 서울대 교수·경제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8.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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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신탁통치」시대니, 「IMF한파」니 하는 지금의 공황상태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먼저 두가지 근본적인 역사적인 사실을 지적하자.첫째 공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경기가 좋은 상태에서는 모두들 호경기가 계속되리라고 생각하여 기업가들은 공장을 확장하기 마련이고, 은행들은 대출을 확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장이 생각한대로 확대되지 않으면 기업은 부도를 내고 은행은 대출을 회수하지 못해 망한다. 이것이 공황이다. 우리들은 지금과 같은 심각한 공황을 해방 이후 처음 맛보기 때문에 정신이 없지만, 선진국들은 수많은 공황을 겪으면서 성장해 온 것이다.

둘째 어느 사회든 공황을 분수령으로 크게 변화한다는 점이다. 1870년대의 대공황은 세계 각국에 독점체를 형성하였고 이 독점체들은 자국 정부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식민지 획득에 노력했는데, 이 과정에서 1914년의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것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정부로 하여금 경제운영에 깊숙이 개입하게 하였고,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를 낳게 하였다. 그런데 70년대의 대공황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를 해체시키고 국영기업이나 공익사업의 민영화, 모든 규제의 철폐, 무역 외환 자본이동의 자유화, 세계적인 규모의 무한경쟁을 초래하였다. 이 과정에서 산업자본은 세계를 단위로 분업과 협업을 실시하여 막대한 이윤을 얻게 되었고, 금융자본은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에서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이익을 획득하게 되었지만, 자본이동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세계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은 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지금 IMF는 우리 정부에게 여러가지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IMF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한국 경제를 살리려고 애쓴다는 환상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IMF는 한국이 외채상환을 거부하거나 유예함으로써 세계 금융질서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며, 나아가서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IMF의 최대 주주인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에게 이익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금융긴축정책은 현금부족에 시달리는 수출산업이나 흑자기업까지도 도산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경제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주가를 폭락시킴으로써 외국기업이나 외국자본이 한국경제를 싼 값으로 장악하게 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정리하는 정책도 두 은행을 외국인에게 팔아치우는 정책이며, 외국자본이 한국금융을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외국인 주식투자한도의 확대, 외국인의 국내 단기금융상품 매입 무제한 허용, 외국인의 회사채 시장 무제한 참가등은 외국 투기꾼들에게 국내 금융시장을 마음껏 농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리해고제의 입법화를 강요하는 것도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며, 대규모의 실업자를 예상하면서도 재정긴축을 강요하는 것은 실업자를 구호할 수 없게 함으로써 근로자가 기업주에게 복종토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 정부와 대통령 당선자는 외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IMF, 외국은행, 외국투기꾼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 그러나 저쪽의 요구는 단기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앞날을 좌우할 성질의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한국사회의 미래상에 비추어 저쪽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배척해야 할 것이다. 통일을 전망한다면 외세가 한국경제를 마음대로 요리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고, 노사정협의체를 제대로 운영하려고 한다면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품처럼 마음대로 빼고 박고 해서는 안될 것이며,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외국투기꾼의 농간으로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의 운영을 감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황은 역사적으로 볼 때 낡은 체제와 제도와 패러다임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작용한다. 모든 백성이 누구의 잘못이냐를 묻지 않고 금모으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의 미래상은 모든 일을 공동으로 힘을 합쳐 해결하는 사회, 즉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일 것이며 따라서 공황을 극복하는 과정도 이 미래상을 실현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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