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위기상황, 남북한 대치국면, 민주주의 정착화 등 산적한 문제를 고려할 때 한국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대통령제하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의 발휘는 자칫 잘못하면 권력의 오용이나 남용을 가져올 수 있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은 차치하더라도 현 문민정부하에서도 문민독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권력이 잘못 사용된 면이 많다.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정치과정을 존중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대통령을 원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강력한 대통령이 조화를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삼권분립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특히 대통령과 의회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운용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통령은 의회의 정치과정을 존중하여야 하며 의회는 자체 노력을 통하여 대통령의 권력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서는 의회를 포함한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존중할 것이라는 징후가 보인다. 우선 김당선자의 개혁에 대한 절차상의 접근이 김영삼대통령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김대통령은 개혁의 과정에서 의회와 사회집단을 소외시켰다. 의회나 시민사회의 충분한 토의와 공론화과정을 거치지 않은채 대통령이 여론에 편승하여 개혁을 독선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리하여 국민의 지지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교육개혁, 노동개혁, 규제완화 등의 개혁은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정부조직개편의 예만 해도 그렇다. 공론화과정 없이 청와대내 소수 실세 경제관료의 결정에 의하여 태어난 재경원이 정부내 정책결정과정에서 행한 독선은 김영삼개혁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김당선자는 정부와 사회집단으로 하여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위원회는 노동계 기업 정부와 정당대표들을 참여시켜 고용조정과 재벌개혁에 관한 고통분담 차원의 합의를 도출해 가고 있다.
인사정책도 그렇다. 김영삼 대통령은 「인사는 만사다」라고 하였지만 자파의 세불리기를 위해 능력보다는 연을 중시하는 인사를 단행한 결과 코앞에 닥친 외환위기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김대통령은 지금까지 25차례나 개각 또는 보각을 하였으며 130명의 각료들이 임명장을 받았다. 김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은 철저한 보안유지였으며 이 때문에 인사에 대한 사전검증은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김당선자가 실시하겠다고 밝힌 인사청문회는 보다 합리적인 인사를 가능케 함과 동시에 의회의 기능을 제도적으로 강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제 하에서의 인사청문회는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항상 남용될 수 있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의회정치과정 존중 의지만으로는 민주적인 국정운영을 보장할 수 없다. 의회의 대통령 견제기능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현재 의회는 여소야대의 구도하에 놓여 있다. 여소야대는 강력한 대통령권력을 견제할 수 있으며 대통령으로 하여금 의회와의 대화와 협조를 통해 국정운영을 하도록 하는 기틀을 마련해 준다. 90년 2월 민자당이 출현하기 이전의 4당체제를 한 여당정치가는 「황금분할구도」라고 불렀다. 여소야대가 등장함에 따라 노태우정권은 야당의 개혁요구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회청문회 활동을 통한 5공청산과 6공초기 일련의 경제력 집중방지 등의 경제적 민주화 조치도 이러한 여소야대에 힘입은 바 컸다. 3당합당 이후에는 국회운영이 대화와 타협보다 수를 앞세운 여당의 일방강행과 야당의 극한저항이라는 종래의 대결논리를 답습했으며 경제민주화 개혁도 퇴색해 버렸다. 현재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은 국정운영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정책에 대하여 잘 한것은 지지를 하고 잘 못한것에는 대안적 비판을 제시하는 책임야당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현재의 여소야대 구도는 보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도 정책의 독주나 독선에서 오는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과거와 같이 인위적으로 여소야대 구도를 바꾸려는 시도는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개혁의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대통령당선자의 스타일, 인사청문회 실시, 의회의 여소야대 구도 등 현재의 상황은 민주적 정치과정 속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 이러한 여건을 대통령, 의회 모두가 적절히 활용한다면 개혁과 정치발전이 동시에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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