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앞서 자메이카 총리 초청”/“쿠데타 지도자 첫 국빈 곤란”/DJ엔 사후에 해명 오해풀어마이클 아마코스트 전국무차관 등은 지난해 12월24일자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미국 정부가 김대중씨의 사형집행을 막기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미국에 초청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이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미를 둘러싼 진상을 모두 공개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가 지미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던 80년 12월 에드먼드 머스키 당시 국무장관은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레이건의 핵심 외교정책 고문이었던 나는 국가안보에 관한 인수문제에 관여했다. 머스키는 한국 군부가 김씨를 처형할 분명한 의사를 가지고 있다며 자신과 함께 한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자고 말했다. 나는 레이건 대통령당선자와 머스키의 제안에 대해 논의했다.
선거전인 10월12일에도 아마코스트 국무차관이 과거 공화당 행정부에서 일했던 인사가 며칠전 김용식 주미 대사와 한국의 중장을 만났다고 얘기해 주었다. 아마코스트는 이 인사가 김 대사 등에게 『한국 정부는 김대중씨를 국제적 파장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말고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이 인사의 말을 우리(레이건측)의 뜻으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나는 아마코스트와 대화를 가진 이후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씨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인권과 정치적 파장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79년 카터의 한국방문 이후 한미 관계는 냉각됐기 때문에 양측간 효과적인 대화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얼마뒤 육군참모차장인 존 베시 장군이 미국 안보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자며 나를 조찬에 초청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놀랍게도 유병현 당시 합참의장과 마주치게 됐다. 유 장군은 김씨가 반드시 처형돼야 한다면서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기전에 이 문제를 매듭짓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레이건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대응방안을 강구했다. 레이건도 김씨의 처형은 도덕적 정치적 재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이 문제를 책임지도록 했다. 나는 비공식적으로 만약 김씨가 해를 입을 경우 한국 정부는 새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퍼뜨렸다.
몇주후 김 대사는 한국 정부의 특사인 정호용 중장이 워싱턴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보안유지를 위해 나와 정 장군은 내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 장군은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미국은 한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면서 김대중씨의 죄목을 열거했다. 한국의 입장이 요지부동이라고 판단한 나는 김씨를 죽일 경우 「번개를 맞는 듯한」 미국측의 반발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건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을 보고하자 그는 『김씨가 감형되기를 원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사를 한국측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정 장군은 만약 전두환 대통령이 취임식에 공식초청 된다면 김씨의 형량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김씨를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셈이다.
나는 외교관례상 취임식에는 국가 수반을 초청하지 않는다면서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 대신 레이건이 취임한 직후 전 전대통령을 만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국빈방문(State Visit)은 아니었다. 한국 쿠데타 지도자를 신임대통령의 첫 외국인 방문자로 만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우리는 전 전대통령에 앞서 에드워드 시가 자메이카 총리를 워싱턴에 초청했다. 또 전씨 방문의 성격과 수준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표현하기 위해 전씨에게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경유하라는 일정을 제시했다. 국빈방문때는 이런 일정을 제시하지 않으며 이는 명백히 외교관례에서 벗어난 행위였다. 그리고 국빈만찬도 오찬으로 대신했다.
(이같은 배경을 모르는)김대중씨는 레이건 행정부가 전두환 정권을 승인했다고 믿게 됐다. 그는 특히 레이건 행정부가 전씨를 지지했다고 비난했다. 80년대 중반 나는 그를 만나 사태의 전모를 들려줬다. 그러자 그는 깊이 감동받아 이후로 감사를 표시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우리가 미묘한 시기에 감수한 위험도 정당화했다. 우리의 모험이 성공하고 한국이 민주국가가 됐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행운이었다.<정리=이종수 기자>정리=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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