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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서 온 연하장/이상호 경제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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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서 온 연하장/이상호 경제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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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동안 런던에서 살면서 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이 사람들과 우리는 어디가 어떻게 다른가」라는 화두였습니다. 작금의 국난속에 이 화두는 더욱 크고 절박한 문제로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지난주 퇴근을 하려고 워털루 기차역으로 가는데 영국사람들이 아주 일상적인 모습으로 지나갑디다. 가판신문도 사고, 초콜릿 가게 앞에서 기웃거리기도 하고, 기차를 놓칠세라 뛰어가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일평생을 그렇게 일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때에도 런던에 있었습니다만, 요즘처럼 짓눌려 보기는 처음입니다』얼마전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선배로부터 받은 연하장 내용이다. 「덕담으로 가득차야 할 신년인사치고는 참…」 이라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무력에 무참히 짓밟혀,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광주항쟁 때보다 더 처참한 심정이라니. 「6·25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하더니 밖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모양이구나」 라고 생각하다가 「아무 것도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그렇게 부럽다」는 대목에서는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찬 바람은 정말 매섭다. 뼛속까지 깊숙이 파고 들더니 어느새 마음마저 꽁꽁 얼려버렸다. 정신과 의사인 한 친구는 「사회적인 집단 우울증」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무거운데다, 부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어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과는 갈수록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IMF 영향으로 차가 잘 빠져 좋아졌다고 하지만, 서민들은 더 많은 돈을 내고도 더 붐비는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서 시달려야만 하게 됐다.

고통은 공정하게 분배됐을 때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그 동안 더 많이 누리고, 특권층이라며 우선권을 요구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앞장서야 한다. 굳이 「노블리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그들이 진정한 「특권 의식」을 발휘해야 할 때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은 만큼 먼저 나서야 한다. 그래야 모두 함께 「짓눌림」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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