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위기는 또다른 발전과정”/‘국가 문화이미지’ 제고가 경쟁력 관건/“한국재벌 창의력 부족 정치인 관료 전문성 결여무모한 금융 상황악화”/“위기극복 충분한 역량 지나친 과잉반응 금물 정치·경제 성숙 기회로”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53) 교수는 21일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김정원 박사와 특별대담을 갖고 한국의 금융위기와 민주발전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등 다방면에서 국제적 명성을 날리고 있는 소르망 교수는 이날 한국의 현 금융위기를 「근대화 과정에서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한국민들은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면서 『한국민들은 이번 기회를 정치·경제적으로 한단계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소르망 교수는 또 문화는 경제와 상호 밀접한 관계를 지닌 만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하에서도 문화 발전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화적 이미지의 고양이 국가경쟁력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대담내용을 요약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대담=김정원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한국은 지금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반면 경제적으로는 IMF 지원체제에 들어가는 등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평가해 주십시오.
『이 문제는 역사, 정치, 경제적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조망해야 합니다. 50, 60년대 전쟁과 가난으로 찌든 나라를 경제대국으로 이끈 힘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은 당시 수출 지상주의와 중앙통제식 경제를 전략으로 삼았고 재벌도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재벌은 세계시장의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는데 실패했습니다. 특히 재벌은 창의력과 혁신의 마인드가 부족한 상태에서 폐쇄적인 정책으로 일관했고, 결국 경쟁력을 상실했습니다. 여기에 정치인, 관료, 금융기관 등 사회 각계의 무책임하고 전문성이 무시된 관행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은행이 기업들의 재무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무작정 빌려준다는 것은 서구식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한국은 정치적으로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의미했고 이는 곧 서구화를 뜻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아 문화가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고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습니다. 특히 군사정권등의 시련기는 있었지만 점진적 정치발전을 이룩한 몇 안되는 나라에 해당합니다. 한국의 지난 50년은 정치적으로 볼때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진화적 단계를 밟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은 지금 금융위기에 처했지만 지난 50년동안 정치·경제적으로 커다란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문화와 국가 이미지에 대한 미약한 인식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미국은 상품뿐 아니라 미국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와 꿈 등이 어우러져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상품의 가격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생산국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구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독일도 가격 경쟁면에서는 뒤지지만 이미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미국과 독일이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이들 국가는 난관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의 힘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까지 가격 경쟁력에만 매달려 왔습니다. 사실 서구 국가 국민들은 한국은 물론 한국 문화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습니다. 때문에 한국은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문화 이미지를 고양하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문화이미지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이는 역사의 산물입니다. 단기간에 완성될 성질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IMF는 긴축재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투자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몫입니다.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과 국제적 예술 교류를 확산함으로써 국제 미디어의 관심을 끄는 등 첫걸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당장은 비용이 들겠지만 국가 위기극복과 경쟁력 회복이라는 기대되는 성과에 비하면 효과적입니다. 내가 정책결정자라면 이같은 문화의 힘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만.
『내가 말하는 이른바 「맥월드(MacWorld)」는 미국의 대외 이미지로서 미국내 문화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단순한 상품을 떠나 외교 경제 군사적 이미지이며 생활양식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일부 국가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중에는 보편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게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인권과 민주주의는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도 중요시 여기고 있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은 하나의 가설일뿐 현실세계에 적용되는 이론이 아닙니다. 따라서 인류는 다극화한 문화속에서 보편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부에서는 한국 문화를 중국문화권에 포함시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는 중국과 시베리아 몽골등 주변국가의 영향을 두루 받은 융합된 문화입니다. 한국은 수렵, 농경, 목축사회가 공존하며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 도교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민족은 강한 유교적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합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과는 구별되는 한국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민족은 이러한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영향속에서 강한 잠재적 창의력을 지니게 됐습니다. 또 한국 민족은 수동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성향을 올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대화 문화의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국민이 폭력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국민이라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한국의 몇몇 대학에서 강연하는 동안 질문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학생들이 토론 문화에 적응이 돼있지 않기 때문이죠. 이는 정치 경제 사회 전분야에 모두 해당됩니다. 학생들은 교수와 강의실에서 이성적 토론을 나누기보다 거리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외칩니다. 경영진도 남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 하고 노동자들은 파업 시위 등 극단적 행태에 익숙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이 최초의 문민지도자라고 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자신이 첫번째 민주정부 지도자라고 말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주적으로 당선된 게 사실이지만 민주적 절차(대화)를 통해 정치를 이끌지 못했기 때문에 또다른 권위주의 정권을 낳았습니다. 한 나라의 민주적 전통이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비판을 수용하는 문화를 만드는데 있습니다. 재벌의 경영진도 이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민주절차의 핵심은 대화와 토론에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토론문화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가정과 학교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선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에 언제든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학교도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한편 이를 구체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미디어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사와 제자, 부모와 자식간의 토론등 다양한 토론 주제를 담은 TV 시트콤 드라마는 매우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북한의 이질감은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질감 해소방안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많은 시나리오가 있겠지만 나는 연착륙(Soft Landing)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남한은 과도한 통일비용 때문에, 북한은 지도부의 반발 때문에 모두 통일 의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반도 내부와 주변의 합의에 따른 단계적 접근을 통해 통일을 지향하는 게 가장 현실적입니다. 식량난에 처한 북한에 최소한의 원조를 제공하고 북한과의 대화채널을 유지하면서 점진적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죠. 평양을 방문하는 동안 북한 정부에도 외부 세계를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정권내에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외부에서 분위기를 돋우는 것도 연착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한국이 현재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하지만 지나친 과잉반응은 금물입니다. 재난을 당한 이재민같이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은 인도네시아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경제적 기초가 튼튼합니다. 그리고 잠재적 창의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제적 음모의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창의력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한국 민족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한 창의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소수의 집단들이 이를 억누르는 체제를 유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 만난 많은 창조적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한국에 가면 억압받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예술계 및 학계의 창의력을 존중해주고 지원하는 풍토를 마련해야 합니다』
아시아 국가의 경제성장을 유교문화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만.
『유교문화라고는 하지만 한국과 대만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저마다 독특한 문화와 경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큰 바구니에 넣고 얘기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사실 「무엇이 아시아적인가」라는 질문에도 답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대기업 위주인 한국과는 달리 대만에는 중소 기업이 발달하는 등 적응방식도 너무 다릅니다. 일부 서구학자들은 70년대초까지 권위주의가 몸에 밴 유교문화는 자본주의 발달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다변화 시대이기 때문에 아시아 경제성장과 유교주의를 연관시켜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금융위기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한국 국민들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등 선진국들도 예전에 경험한 바 있습니다. 또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프랑스도 한국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실업사태로 인한 시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국만이 당하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반드시 거쳐야할 통과의례로 보는 게 타당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입니다』<정리=이종수 기자>정리=이종수>
□약력
▲1994년 프랑스 로트 에 가론 출생
▲파리 정치대·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 졸업
▲파리 동양어학교 일본어·일본문명학위
▲소르본느대서 불문학 학위
▲소르망출판사 설립
▲파리 정치대서 거시경제학 및 정치경제학 강의(70∼86년)
▲르 피가로―월스트리트저널 고정 칼럼니스트
▲국제기아해방운동회장
▲알랭 쥐페 전 프랑스총리 경제고문
▲저서:미국의 보수주의적 혁명, 신국부론, 자본론, 발전과 종말, 열린 세계와 문명 창조, 프랑스인의 행복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