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각국 신문에 충격적인 사진 한장이 실렸다.「국가부도」라는 벼랑끝에 몰린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새 요구조건에 서명하는 모습을 캉드쉬 IMF총재가 팔짱을 끼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사진이다.이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전쟁에 진 장수가 적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굴욕적인 장면이 떠올랐다. 한마디로 1910년 한일합방조약을 받아들인 고종이나 강압적인 IMF안에 서명하는 수하르토 대통령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IMF는 과거 함대를 이끌고 식민지 개척에 나섰던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을 연상케 한다. 말이 국제기구이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후진국을 요리하기 위해 앞세운 「국제함대」와 다를 바 없다. 여기에 걸려든 국가치고 상당기간 국가주권이나 주체성을 박탈당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러시아도 그중의 하나다. IMF는 현재 러시아의 경제개혁에 대한 지원금으로 102억달러를 산정해놓고 러시아 경제정책을 떡주무르듯 한다. IMF가 자금지원을 중단하면 50억달러 상당의 예산부족에 직면하게 되는 러시아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탓이다.
IMF의 대러시아 지원조건은 세금 징수율을 높여 100조루블(약 200억달러·97년)안팎의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것이다. 40%대에 머무는 징세율을 50%대로 끌어올리면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좋아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내건 조건이다. 러시아의 체불세금 규모는 어림잡아 130조루블(약 260억달러·97년 11월). 이중 45%가량이 자동차회사 「아프토바즈」등 73개 대기업에서 안낸 것인데 월급도 제때 주지 못하는 기업들이 세금을 먼저 낼 리가 없다. 러시아는 또 지하경제규모가 50%를 넘는다. 세금을 제대로 걷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버티는 것은 협상력 때문이다. 정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IMF를 설득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내곤 했다. 여기에는 전문가의 정연한 논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도 IMF와의 재협상을 요구하기에 앞서 상대를 설득할 논리를 개발하는 일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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