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현대그룹의 구조조정계획 발표장에서 기자들은 현대측에 보완설명을 요구했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고 지금까지 이미 나왔던 얘기와 달라진 게 뭐냐』는 것이었다. 이에대해 현대측 일부 관계자는 『엄청난 변화의 의지를 읽지 못하느냐』며 오히려 기자들의 무지를 탓하고 나섰다. 기자들은 당혹스러웠고 LG그룹의 발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분위기였다.20일 구조조정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던 삼성과 SK는 돌연 발표자체를 연기했다. 현대나 LG의 발표내용에 대한 비난여론이 만만치 않으나 자신들이 내놓을 카드 역시 현대와 LG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고민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자는 분위기가 각계에서 활발히 일고 있으나 고통분담의 큰 몫을 맡아야 할 사는 아직도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대기업, 재벌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들의 주문은 정권을 달리할 때마다 있어 왔다. 보유부동산을 골라 내다 팔라는 90년 5.8부동산 강제매각조치때는 총수들이 전경련에 모여 『정부의 요구를 100% 수용하겠다』고 선언한 뒤 청와대로 몰려가 다짐대회까지 가졌다. 그러나 실천은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주문과 답은 비슷하게 진행됐다. 「새 정권의 개혁주문재계의 알맹이 없는 화답어물쩡 넘어가는 정치권과 재계재벌에 대해 비난여론 증폭」의 악순환이 계속돼 온 것이다.
15일 전경련회장단회의 결과나 이어 주요 그룹들이 내놓는 구조조정안은 재계가 『이번 역시 적당히 넘어가면 될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재벌들이 아직 정신 못차린 것 같다』는 목소리도 높다. 각계 전문가들은 『곪은 상처 도려내 새살이 돋게 하듯 IMF체제가 많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우리나라가 진정한 도약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이를 이겨내자』고 입을 모으고 있다. IMF체제와 정권교체가 겹친 현 상황은 재계에도 새살(국민의 애정)을 돋게 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다. 재계가 이번 기회마저 잡으려 않는다면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외면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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