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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꼭 필요하다/한인섭·서울대 교수·법학(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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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꼭 필요하다/한인섭·서울대 교수·법학(전문가 진단)

입력
1998.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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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통령은 「인사는 만사」라는 말을 되뇌면서 모든 공직인사를 혼자서 단행했다. 그 결과 많은 폐단이 생겨났다. 임명된 지 한주일만에 사퇴해야 하는 장관이 있었고, 총리와 장관의 평균수명은 1년도 되지 못했다. 깜짝쇼식 인사, 밀실인사로 지칭된 YS식 인사는 만사를 망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이런 폐단을 보면서 주요 공직자 인사에 대한 청문회가 실시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는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주요 공약으로 자리잡았다. 이미 96년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인사청문회법안까지 의원입법으로 발의해놓은 상태다. 구체적 대안까지 마련했다는 것은 인사청문회 공약이 정치공세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회의와 자민련 주변에서 청문회 연기론·무용론이 나오다 이제 일부에 한해 청문회를 열겠다는 식의 인색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공약은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관련 공약과는 달리 인사청문회 공약은 대선을 전후하여 사정이 특별히 달라진 것도 없으며, 오히려 그 필요성이 두드러진다. 그런 공약까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버려야 한다. 우리의 경제위기가 국가신인도 추락에서 왔듯이, 국민과 대통령 사이의 「신뢰성 위기」는 우리 정치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의 부작용을 운운하기 이전에 그 장점이 깊이 음미되어야 할 것이다. 전문성, 업무추진력, 재산형성 과정, 사회적 활동, 인격등 그 살아온 과정을 검증하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직자들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비리와 부패에 오염된 자는 아예 고위공직을 꿈꿀수 없을 것임을 인사청문회는 깨우쳐줄 것이다. 대신 일단 청문회 관문을 통과한 공직자는 자격시비로부터 벗어나 소신있게 업무처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써 청문회를 거친 인사를 자주 바꾸어 업무 공백을 초래하는 폐단도 줄어들 것이다. 인선과정에서 국민여론을 수렴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를 한걸음 진전시킬 수 있는 이점도 간과되어선 안된다.

청문회의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음해와 투서로 개인의 평생의 명예를 훼손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슬기를 모아야 한다. 이번 인사청문회는 첫단추를 끼우는 단계임을 모두가 인정하면서, 그 장점을 극대화하고 폐단을 극소화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국난의 위기에서 인재풀(pool)이 제한되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의 인사청문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인사를 걸러내는 정도의 역할로 첫 출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경제파탄의 책임자에게 경제부처를 맡길 수 없고, 부정부패의 범죄자에게 법질서 수호를 감당할 법무행정이나 감사원의 장을 맡겨서는 안된다. 전문분야에 무지한 인사에게 해당부서를 맡길 수도 없을 것이다. 인권의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의 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의 경우에는 훨씬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청된다.

현행법 하에서도 인사청문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행 헌법에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등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다. 이제껏 국회의 동의는 토론없이 무기명투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공론화 과정이 생략되고, 당사자의 해명기회도 차단한 채 이루어진 이러한 동의는 있으나마나한 것이다. 동의권 행사를 위한 청문절차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문대상자는 국회동의를 받는 자에게만 한정해서는 그 의미가 반감되며, 다음의 경우에는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법제화해야 할 것이다. 첫째, 검찰총장 한국은행장과 같이 그 직무의 독립성이 요청되고 법률로써 임기를 보장하고 있는 경우에는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함으로써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둘째, 행정 각부의 장관들이 가진 비중을 감안하면 장관급 인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대법관 전원은 물론 헌법재판관 전원에 대하여도 청문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그 위상과 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청문대상자의 범위를 일단 이렇게 설정하되, 실행해가면서 그 범위를 차츰 넓혀가야 할 것이다.

청문회 실시의 절차에 대한 규정도 참여민주주의의 본령에 맞게 짜여져야 한다. 시민사회와 언론 전문가의 의견과 자료수렴단계를 거쳐 국회에서 청문을 하되, 그 청문절차에는 국회의원 뿐아니라 시민적 여론을 대변할 수 있도록 위원회의 구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와 국회는 인사청문회를 명과 실이 부합되게 추진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를 한걸음 앞당겼다는 평판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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