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구정으로 불리던 84년 설날(2월2일)무렵 신문이나 방송에 구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5공정권이 쓰지 못하게 했다. 신문들은 「바쁜 날」「성수기」 등의 단어로 설을 표현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여서 역과 터미널은 귀성객들로 대만원이었다.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국민과의 TV대화는 IMF한파에 짓눌린 국민들의 마음을 한 때나마 풀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난국을 이끌어갈 최고통치권자와 보통사람들의 격의없는 대화가 생중계된 자체를 위안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대통령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면 국민들에게 드리워진 불확실성이 적어진다. 원인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듯이 불확실성이 적어지면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우리의 큰 병폐 중의 하나가 밀실행정이었다. 밀실행정은 부정부패를 낳고 피해자는 국민이다.
어느날 닥친 IMF구제금융사태에 서민들은 넋을 빼앗겼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거리로 쫓겨났고 더욱 늘어날 것이다. 물가는 폭등하는데 임금은 줄어들고 세금은 더 많이 내야한다. 외채를 갚기 위해 이같은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막막하다. IMF사태는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고 있다. 장롱속 달러와 금붙이 모으기에서 잘 드러났다. 서민들이 너나 없이 동참할 때 일부 부유층은 달러사재기 등으로 부를 늘렸다. 은행들이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확보하기 위해 내놓은 고금리상품으로 앉아서 떼돈을 벌고 있다. 반면 서민들은 예금이나 보험을 손해를 보면서 중도해약하고 있다. 내집 마련의 꿈은 높은 대출이자로 중도금을 해결할 수 없자 포기사태다.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는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 요인이 된다. 갈등은 불안으로 귀결된다. 이미 IMF형(생계형) 범죄가 나타나는데서 반증되고 있다.
우리의 서민들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 6개월된 아들의 분유값 때문에 고물을 훔쳐야 했던 20대 아버지를 돕기위해 서슴없이 주머니를 털었다. 고통을 분담할 여력이 없으면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며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부유층 재벌 정치권은 이제부터라도 제밥그릇만 챙기는 행태에서 벗어나 고통분담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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