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여명 혹한·허기에 “덜덜”/“젖먹이 분유떨어져” 발만 동동/기름고갈 히터도 못켠채 밤샘/걸어서 휴게소로 꼬리문 행렬【강릉=곽영승·박일근 기자】 추위와 공포의 이틀밤이었다. 14일 저녁부터 강원 영동지방을 급습한 폭설로 영동고속도로 대관령구간에서 5천여명이 차속에 갇힌채 혹한과 허기에 떨었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구간은 15일 0시께부터 상·하행선 양쪽 길에서 차량들이 멈춰서기 시작했으며 15일 상오 3시30분 횡계IC―구산휴게소에 차량통제가 실시되면서 이 구간에 들어선 2천5백여대가 고스란히 눈속에 갇혔다.
승객들은 차량이 고립되자 휘발유가 떨어질 것을 우려, 히터도 제대로 켜지 못한채 서로 부둥켜안은채 몸을 녹이며 밤을 지새웠다. 젖먹이나 어린이를 동반한 운전자들은 휴게소에서 『아이가 보챈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일부 차량은 눈이 차창까지 쌓여 문이 열리지 않는 바람에 밖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차밖으로 빠져나오기도 했다.
○…대관령휴게소와 구산휴게소는 추위와 허기에 지친 수천명의 승객과 차량 2백50여대가 한꺼번에 몰려 내내 북새통을 이뤘다. 눈보라를 막기위해 얼굴을 비닐로 감싼채 4∼5㎞를 걸어온 승객들은 휴게소에 얼마 남지않은 음식물들을 먼저 차지하기위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또 휘발유통을 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주유소로 몰려드는 바람에 저장탱크의 기름이 삽시간에 바닥을 드러냈으며 일부는 휴게소에서 1·5ℓ짜리 음료수페트병을 구해 차의 연료통을 채웠다. 연료를 구하지 못해 차의 히터조차 틀 수 없게된 2백여명은 아예 휴게소내 의자와 로비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밤을 새웠다.
○…한국도로공사 직원들과 인근 군부대 장병들은 15일 아침부터 중장비 등을 동원, 제설작업에 나섰으나 차량들이 도로를 완전히 메운데다 눈이 계속 내려 상오9시께 작업을 일단 포기했다. 김상기(28·서울 강남구 신사동)씨는 『길이 막히자 일부 운전자들이 먼저 가려고 중앙선과 갓길을 침범, 차량이 뒤엉키는 바람에 제설작업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제설작업은 이날 하오 2시30분께 재개돼 하오 6시께부터 일부 차량들이 통제구간을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했으며 밤 10시께 강릉쪽 하행선 1개차선의 차량소통이 재개됐다. 그러나 차량들이 워낙 많이 밀려있었던데다 길이 미끄러워 1백여대가 자정이 넘도록 빠져나가지 못했다.
○…도로공사측은 이날 휘발유 6천5백ℓ와 경유 3천6백ℓ, 빵, 우유 등을 실어날라 차 속에 갇힌 승객들에게 공급했으며 밤 11시30분께는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사무국장 오균석)직원들이 트럭에 5백여명분의 컵라면과 보리차 담요 생수 등을 싣고 대관령휴게소를 찾아왔다. 적십자사 이정호(35)씨는 『대관령 휴게소에 많은 사람들이 대피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하오 7시께 인천을 출발, 서둘러 달려왔다』고 말했다.
○…영동고속도로의 대관령구간에 내린 적설량은 이 도로 개통이후 최대 적설량으로 기록됐다. 이 구간은 14일 하오 8시부터 15일 하오 8시까지 무려 98.8㎝의 눈이 내려 75년 10월 개통이후 하루기준으로는 가장 많았다. 지금까지는 89년 2월15일 90㎝, 93년 1월16일 87㎝가 최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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